[이병일 변호사의 녹색서재] 데이비드 보이드의 “자연의 권리”

2021년 5월 27일 | 녹색칼럼, 활동

 

이병일 변호사(법무법인 새길, 녹색법률센터 소장)

 

 

자연이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게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강, 또는 하나의 생태계 전체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여 어떠한 권리를 인정하고, 그 권리에 기초해서 이를 침해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고 피해회복을 요구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동물의 권리, 종의 권리, 생태계의 권리까지 다루고 있고,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저의 인식과 고민의 영역도 점점 더 확대되었습니다.

 

절멸 위기 동물, 동물 실험, 농장 동물에 관한 논의에서는 동물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방법이 아닌 인간에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의무를 부여하는 방법으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결과는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에게 일정한 의무를 인정함으로써 반사적으로 동물권, 자연권을 인정하는 것과 사실상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통해서 반대의 목소리와 큰 충돌을 피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는 우회적인 방법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결국 동물에게 권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우회하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정공법보다는 우회로를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기는 합니다.

 

책에서는 인도, 필리핀, 미국, 뉴질랜드,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세계 각 지역에서 동물의 권리,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고 옹호하고자 진행되었던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활동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의 근본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 종교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신이 창조하고 기뻐하였던 피조물들을 신의 피조물의 하나일 뿐인 인간이 멸절시키는 것이 용납될 수 없을 것이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종교관이나 애니미즘, 불교 윤회론에서 살펴본다면 자연과 동물의 문제가 인간과 독립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러한 면에서 인도 법원 판례에 미치는 힌두교의 영향력과 에콰도르 헌법 개정에 투영된 원주민들의 가치관과 그 영향력, 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옹호하는 볼리비아의 인구 55%가 원주민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동물의 권리, 자연의 권리 헌법이나 법률 개정의 방법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인정될 것이나, 문화, 가치관, 윤리 기준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입법 만능주의로 귀결될 위험성도 다분하겠다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약 300쪽에 달하는 이 책에 쓰여진 수 많은 문구 중에 가장 깊이 가슴에 박히는 문장은 본문이 아닌 책 차례 앞쪽에 쓰여 있던 “크리스토퍼 스톤 교수”의 “법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어떤 새로운 실체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따라서 매번 다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라는 문구였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인종에 대한 혐오와 갈등이 존재하지만, 흑인의 인권에 대해 부정하는 일이 현재 기준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지만, 불과 몇 세기 전에는 말하는 동물로 취급되어 노예주의 소유물로 다루어졌고, 이와 달리 취급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당연시되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물과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다는 주장이 현재로서는 다소 터무니없는 일로 치부되고 있을지라도, 몇 세기 후에는 동물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부정하는 언행이 오히려 상상할 수조차 없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흑인과 여성, 아동에게 권리를 당연히 인정하는 것처럼 동물과 자연에게 권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되는 그러한 시대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