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빈 변호사의 녹색서재]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2021년 7월 2일 | 녹색칼럼, 활동

 

 

 

 

 

 

 

최석빈 변호사(법무법인 지금,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모렐은 코끼리를 구하러 아프리카로 떠난 사람입니다. 모렐은 말합니다. ‘간단한 사실이에요. 개로는 이제 부족한 겁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외롭다고 느껴서 동반자가 필요한데, 훨씬 더 덩치가 크고 강한 무언가가 필요한 겁니다. 기대어도 버틸 수 있을 무언가가 말이죠. 더는 개로 충분치 않고 사람들에게는 코끼리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코끼리를 건드리는 걸 원치 않아요.’ 모렐은 말에 그치지 않고,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를 누빕니다. 코끼리를 쏘는 사람들에게 총알을 날리고, 상아가게와 기념품창고를 불태우며, 맞닥뜨리는 모든 사람에게 코끼리를 보호하자는 청원서를 건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모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화를 냅니다. ‘이 대륙에 얼마나 많은 수면병 환자와 나병 환자가 있는지 아시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어가죠. 파리 떼처럼 말이오. 트라코마는 들어보았소? 스피로헤타는? 필라리아병은? 그런데도 코끼리를 가지고 날 성가시게 한단 말이오?’ 프랑스인 차드 지사는 비난합니다. ‘지금 이 시각 세상에는 우리의 그 친구나 자네가 헌신적인 정성을 바칠만한 이유나 가치, 코끼리보다 좀 더 가치 있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지 않나? 이를테면 자유같은 것 말일세. 우리는 아직까지 절망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일세. 낙담해서 짐승한테 위로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네. 사람들은 이 순간에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전체주의의 감옥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네.’ 늙은 흑인 교사는 모렐의 청원서를 내던집니다. ‘당신의 코끼리란 배부른 유럽인의 생각에 지나지 않소. 그것은 포만한 부르주아지의 생각이오. 우리들에게 코끼리란 걸어다니는 고깃덩이일 뿐이오. 우리에게 쇠고기가 충분히 생기고 나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봅시다…….’ 성공한 광산 사업가는 모렐을 공산주의자라고 오해합니다. ‘네놈과 네놈 부하들은 그걸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대한 후안무치한 착취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걸 모두를 위한 무엇보다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아프리카 건설이라고 부르지. 거의 우리들만이 무기를 소유하고 허가를 얻고, 짐승 사냥을 하기 때문에, 너는 코끼리 사냥을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지……. 그래, 네놈들의 공산주의 신문에서 나도 이런 걸 죄다 읽었지.’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반군 대표도 말합니다. ‘당신네 관광객들이 오직 관심을 갖는 동물들을, 얼마 없는 우리네 도로 가장자리에서 볼 때면 내가 무얼 느끼는지 아시겠소? 수치감이요, 수치감. 그 “아름다움”이란 우리 흑인들의 벌거벗은 엉덩이와 매독, 나무 위 생활, 미신, 그리고 지독한 무지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우리는 선사시대의 코끼리나 우리 마을로 아직도 어린애들을 잡아먹으러 내려오는 사자와 동시대인 물신숭배의 암흑 속에 잠긴 대륙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진보하는 대륙을 원하오. 우리에게 정글은 우리가 처치해야 할 해충이요.’

 

하지만 모렐에게 코끼리는 동물인 동시에 인류의 명예와 존엄이 투영될 대상입니다. 레지스탕스로 독일과 맞서 싸우다 수용소에 수감됐던 모렐은, 그 안에서 존엄성과 ‘코끼리’ 그리고 ‘뒤집혀진 풍뎅이를 바로 놓는 것’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체득했던 것입니다. 거침없이 내달리며 천지를 진동시키는 이 거대한 생명체는, 개발과 효율의 파도 속에서도 고고히 여백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마치 희미해져가는 자유와 정의, 사랑과 인권과 같은 가치들처럼, 인류애를 상실하고 쓰러진 사람들이 그 존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자 인류의 명예를 지킬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모렐과 동료들은 진보의 미명 아래 잊혀지는 인류의 존엄, 다시 말해 ‘서투르고 성가시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사방에서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인생의 아름다움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코끼리 같은 존재와 가치들을 위해, 인종과 국적, 직업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어깨를 겯고 함께 걸어나갑니다.

 

대학에 입학한 해 겨울, 이 책을 읽으며 자연보호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일지 더듬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인류에겐 결국 ‘모든 개, 모든 고양이, 모든 카나리아, 눈에 띄는 모든 짐승이 다 필요’하다는 사실, ‘코끼리들이 우리와 함께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부터 막아야’한다는 사실, 우리 모두 존엄을 잃고 풍뎅이처럼 자빠져있다 할지라도 ‘영원히 자빠져있게 내버려둘 순 없’고 서로 ‘몸을 뒤집도록 도와줘야’한다는 사실들을 돌이켜볼 수 있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기후재난과 환경문제, 어쩌면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일상의 선택들 앞에서 코끼리를 포기하고 그냥 ‘자빠져있고’ 싶을 때가 많지만, 모렐은 그때마다 저를 다시 뒤집어주는 좋은 풍뎅이였습니다. 나날이 뜨거워지고 뾰족해지는 사회 앞에 무력감으로 지치기 쉬운 오늘, 환경보호와 인간의 존엄성을 함께 조명한 세계 최초의 자연보호소설 <하늘의 뿌리>를 추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