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변호사심포지엄

2009년 10월 15일 | 법률대응 자료 및 기타




김재영(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회 위원장)


Ⅰ. 서론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에 이르고, 피해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거나 매우 복잡한 경우가 많으며, 피해범위는 광범위하나 개별적인 피해액수는 적다는 특성을 가진다. 이로 인해 집단화 양상을 띠는 환경분쟁은 공법 및 사법 영역에 걸쳐 복합적인 쟁송을 수반하고, 그러한 집단적인 쟁송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한다.  

  이하에서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와 관련하여, 제도 도입에 대한 찬반논란과 그 동안 추진되어 온 입법화 노력, 그리고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입법시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본다.


Ⅱ.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한 찬반론

  우선,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은, (1)집단소송제를 활용하면 개개인의 청구액이 근소하여 소송경제상 일반소송절차로는 손해배상을 받기가 어려운 소액다수사건에 대해서도 법적 구제가 가능해진다는 점, (2)가해자 입장에서는 유사소송의 반복을 통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법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어 소송당사자와 법원 모두에게 소송 간이화의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 (3)기업들도 경영활동을 함에 있어서 집단소송제를 의식해서 가급적 환경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예방 활동을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된다는 점 등을 주된 논거로 삼고 있다.  

  반면,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은, (1)패소시 소송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집단구성원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2)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법원의 판결은 분쟁해결의 차원을 넘어 법원 독자의 정책을 형성함과 동시에 법규범을 정립•발전시키는 기능이 강해지므로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 (3)집단소송제의 본래적 의도를 벗어나 사업적•모험적 소송 남발, 합의목적 집단소송 제기나 제기 위협, 비공식적 이익추구 등의 폐해가 발생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주된 논거로 삼고 있다.

  생각건대, (1)제외신고제도(미국식)든 참가신고제도(영국식)든 고지를 통해 집단구성원에게 당해 소송의 기판력을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사전에 부여하기 때문에 재판청구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고, (2)법원이 법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법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규범통제만 행하는 한 행정부나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으며, (3)집단소송 허가(인증)제도를 적절히 운용함으로써 남소 등의 폐해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4)개별적 소송진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고, (5)공동소송제도나 선정당사자제도 등 기존의 소송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소액다수의 집단분쟁에 있어서 소액다수의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가 가능해지고, (6)환경오염과 관련된 위법한 행정에 대한 사전예방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환경관련 집단소송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Ⅲ.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입법화를 위한 노력

  한국에서는 그 동안 환경, 증권, 소비자 관련 분야 등의 집단분쟁을 규율하기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결과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되고 소비자기본법 안에 소비자단체소송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지만, 환경분쟁과 관련해서는 종래부터 있었던 환경분쟁조정법 안에 ‘다수인 관련 분쟁의 조정’에 관한 규정 외에 집단소송법 또는 집단소송에 관한 규정은 아직까지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 1983년 행정소송법개정안 제18조 제2항

  1983년 행정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집단소송제 명문화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논의의 주된 쟁점은 집단소송제에 관한 규정 전부를 행정소송법에 둘 것인지, 아니면 집단소송의 진행절차와 판결의 효력 등 집단소송제의 특수한 사항에 관한 규정은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두고 그밖의 일반적인 사항에 관한 규정은 행정소송법에 둘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 끝에 나온 행정소송법 초안 제18조 제2항에는 “원고가 될 자가 다수인 경우에 그 전원이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할 때에는 그들 이익을 위하여 그들의 일부나 그들이 속하는 단체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소송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으나, 위 조항은 추후 논의 과정에서 삭제되어 입법화되지 못했다.

2. 1996년 법무부의 집단소송법시안

  자몽사건, 대구페놀오염사건과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공단 폐수방류로 인한 어장피해사건 등 소비자 및 환경 관련 집단분쟁이 빈발하게 된 상황에서 법무부는 법무자문위원회에 민사특별법 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설치하고 집단분쟁 해결을 위한 입법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가칭 ‘집단분쟁처리절차법안’이라 불리는 법안을 작성하고 1996년 집단소송법시안으로 발표하였으나, 재계의 적극적인 반대와 입법추진주체의 부재 등으로 후속 입법작업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 입법청원을 시작으로 다시 증권 분야를 중심으로 하여 집단소송제 도입을 위한 입법작업이 이루어졌고 2003년에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3. 2004년 11월 한국환경법학회의 환경집단소송법(초안)

  환경부는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한지, 외국의 경우 환경관련 집단분쟁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고 그 장단점은 각각 무엇인지, 한국에 적합한 환경관련 집단소송제는 무엇인지 등에 관해 한국환경법학회에 연구용역을 주었고, 한국환경법학회는 2004년 11월에 ‘환경관련 집단소송제도 도입 방안’이라는 최종보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하였다.

  최종보고서 마지막 부분에는 5장 65조로 구성된 ‘환경집단소송법(초안)’이 수록되어 있다. 동 초안은 (1)공법적 구제와 사법적 구제의 이원적 요소를 조화롭게 규율할 의도로 환경집단소송의 종류를 항고소송과 유지청구소송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규정하고 있고(제5조의 2 제1항), (2)인지대를 민사소송등인지법 제2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산출된 금액의 1/2로 하면서 그 상한을 5천만원으로 정하고 있으며(제6조 제2항), (3)대표당사자는 환경집단소송을 제기한 자 혹은 대표당사자 지위승인을 신청한 자 중에서 총원의 이익을 공정하고 적절히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제10조 제1항), 대표단체는 법률이나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법인 또는 환경보호 기타 이에 준하는 공익 추구를 정관에 규정하고 있는 비영리법인일 것 등 초안이 정한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로서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대표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동조 제2항).
또한 (4)구성원이 통상의 소송절차에서 소송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수일 것, 구성원의 각 청구가 법률상 또는 사실상 중요한 쟁점을 공통으로 할 것, 환경집단소송이 총원의 권리실현이나 이익보호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수단일 것, 환경집단소송 이외의 집단적 분쟁을 해결할 적절한 소송수단이 없을 것 등의 네가지를 소제기 요건으로 정하고(제11조), (5)이러한 소제기 요건을 갖춘 경우 환경집단소송의 인증(허가)과 고지, 그리고 인증(허가)된 환경집단소송의 통지 및 공고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제14조, 제15조).
그리고 (6)소송비용과 관련해서는 법원이 사건의 규모, 대표당사자 또는 대표단체의 자력 기타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소송비용의 예납명령을 유예하고 국고금으로 체당할 수 있도록 하고(제17조의 2 제2항), 대표당사자 또는 대표단체가 소송비용의 부담의 재판을 받은 경우에 법원은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결정으로 위와 같이 유예된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으며(동조 제4항), (7)구성원은 법원이 정한 제외신청 기간 내에 서면으로 법원에 제외신청을 할 수 있고, 구성원의 제외신청은 법원이 제외허가를 한 경우에 한하여 제외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7조).
  한편, 심리절차 및 판결의 효력과 관련해서는 (8)원고는 청구원인사실에 관하여 스스로 조사하여 밝힐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사항에 대해서는 개략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고 하면서(제28조 제1항), 원고가 주장하는 청구원인 사실과 결과간에 인과적 개연성이 있는 경우에는 피고가 사실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동조 제2항), (9)소취하, 소송상의 화해 또는 청구의 포기는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으며(제36조 제1항), (10)판결은 제외신청을 하여 허가를 얻은 자 이외의 총원에 대하여 그 효력이 미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8조 제1항).
  마지막으로, 제4장에서는 비용의 부담과 분배절차에 관해 자세히 규정하고 있고(제39조 내지 제60조), 제5장에서는 소를 제기하는 자, 대표당사자, 대표자, 소송대리인 또는 분배관리인의 배임수재 등 벌칙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제61조 내지 제65조).

4. 2004년 12월 최재천 의원 등 15인이 발의한 집단소송등에관한법률안

  집단소송제는 사실 증권 분야보다는 환경이나 소비자 분야 등에서 더 절실하게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증권 관련 피해에 대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집단소송을 허용하는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되었을 뿐 환경 또는 소비자 분야 등에서 발생하는 집단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소송제가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 국회의원들이 2004년 12월에 “공통의 이익을 가진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그 다수인을 위하여 그 중의 1인 또는 수인이 그 다수인의 명시적인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당사자가 되어 피해의 구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수행함으로써 다수인의 집단적인 분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특칙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소송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법안은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과 독일식의 단체소송을 결합하는 형태를 취한 기존의 집단소송법시안이나 환경집단소송법(초안)과는 달리 순수하게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나, 그밖에 변호사강제주의(제5조), 소송비용의 유예, 면제(제15조), 제외신고(제27조), 주장•답변 및 석명(제28조, 제29조), 판결의 기판력(제38조)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위에서 이미 살펴본 ‘환경집단소송법(초안)’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상론하지 않기로 한다.  


Ⅳ.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입법시 고려해야 할 사항

우선, ‘증권관련 집단소송법’과 같이 ‘환경관련 집단소송법’이라는 단일법 형식이 바람직할지 아니면 환경 분야 뿐만 아니라 소비자 분야 기타 집단소송이 필요한 분야를 포괄하여 그 규율대상으로 삼는 ‘집단소송법’이라는 통합법 형식이 바람직할지, 그것도 아니면 기존의 행정소송법과 민사소송법에 집단소송에 관한 규정을 삽입하는 형식이 바람직할지가 문제될 수 있다. 사견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집단소송에 관한 일반적 절차규정만큼은 공통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입법체계상 단일한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환경이나 소비자 기타 각 분야별 분쟁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또 각 분야별 집단소송제 입법화에 관한 이해관계도 상이하기 때문에 이런 사정까지 감안한다면 ‘환경관련 집단소송법’이라는 단일법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집단소송제의 구조를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 형태로 할 것인지 또는 독일식의 단체소송 형태로 할 것인지, 또는 양자를 결합한 형태로 할 것인지가 문제될 수 있다. 사견으로는 다른 두 형태를 형식적으로만 결합시키면 오히려 집단분쟁의 해결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환경관련 집단소송제는 사법적 구제와 공법적 구제의 이원적 요소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미국식의 대표당사자소송은 사법적 구제에 보다 유용한 면이 있고 독일식의 단체소송은 공법적 구제에 보다 유용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일단 양자를 조화롭게 결합시키되 만일 대표당사자와 대표단체의 소송수행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느 한 쪽을 우선시하는 방식 등으로 적절히 운용하는 것이 집단소송제의 목적 달성에 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집단소송의 적용대상 특정, 적절한 대표성 확보, 소송허가결정의 고지방법, 소송비용 면제 등이 문제될 수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Ⅴ.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환경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논의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집단적인 환경분쟁을 유효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회와 정부, 학계, 법조계, 그리고 시민단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과제는 남소 등 폐단을 우려하는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환경관련 집단소송제를 하루 속히 입법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