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기름유출사고1년, 프레스티지호 사례에서 배운다.

2009년 10월 13일 | 활동소식













삼성중공업기름유출사고1년, 프레스티지호 사례에서 배운다.
-눈까마이즈! 결코 다시는!


환경소송센터 김 혁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 1주년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의 주제는 기억이다. 전시회는 우리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기획되었다고 한다. 1년 전 기름폭탄이 터졌을 때 폭탄은 회오리폭풍을 일으켰고 드넓은 바다를 뒤덮었으며 바다에 기대어 사는 모든 존재를 남김없이 쓰러트리고 부수었다. 사방 천지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공익법률상담소 일로 얼마간 태안읍에 머물렀다. 상담소를 찾아온 사람들은 기름유출로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되었는지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도 먼저 간 이에 대해 연민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저 마다 가슴속엔 분노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서로 달랐다. 주민들에게 세금계산서니 현금영수증이니 신용카드 결제 영수증에 대해 얘기 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 입증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는 이들의 눈망울은 먹먹했다. 그들 눈빛에 조금씩 생기를 되찾은 건 국가에서 나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있었다. 일을 풀어나가야 할 기관인 해양수산부도 얼마 후면 사라질 터였다. 새로운 정부에서 주민들을 위해 나올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싸움을 하기에도, 피해보상을 받기위한 자료 수집을 위해서도 시간은 부족했다. 하루가 아까운 시간이었지만 주민들은 매일 방제작업을 위해 바다에 나가야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스페인 정부

국가와 정부의 존재이유에 대해 스페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002년 11월 13일 프레스티지호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해안에서 좌초했다. 이 침몰로 63,000톤의 기름이 유출되었고, 피해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포루투칼로 확산되었다. 최근에 이곳을 방문했을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 이 사건은 이미 잊혀진 기억이었다. 기름유출로 인한 주민피해보상은 사건 후 2년 만에 거의 정리 되었다.
스페인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운 경기를 승리로 이끈 축구팀 주장 같았다. 경기 풀어나가기가 어려웠던 건 기름피해 규모가 스페인 역사상 최악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가 국제유류오염기금(이하 IOPC)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액을 산정해서 보상액을 지불하는 IOPC는 시종일관 원칙과 기준을 들이밀며 깐깐함을 유지했다. 피해액의 이십분의 일도 되지(스페인은 사건 후 약 7조 5천억원 유로를 지출할 예정이지만 IOPC 배상한도는 약 3천 억 원에 지나지 않음)않는 돈을 내어주면서도 생색은 있는대로 내었다. 무엇보다 이마저도 더디게 진행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IOPC와의 협상을 통해 국가 선지급 방침을 세웠다. 자체적인 보상기준과 범위를 정해 재정경제부에서 시행했다. 지급액에 불만이 있는 피해자들은 의의를 제기했고 이는 비영리 국가보험사(Cosorcio de Conpesation)에서 검증했다. 이곳에서 검토한 1000건 대부분의 지급액이 올랐다. 얘를 들면 이런식이었다. 대규모 홍합 양식장인데 회계장부가 없었다. 국가보험사가 피해보상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합 생산 통계량을 전체 양식장과 해당지역 면적으로 나누어 계산하는 것이었다. “피해가 있다면 보상을 해주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국가보험사 메르세데스씨는 말했다. 스페인에서 우리가 만났던 공무원들은 모두가 가슴이 뜨거웠다. “모두가 만족하는 피해보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IOPC 의 파트너가 스페인 정부였기 때문입니다.” 해양오염방지센터에서 만난 뿌레까시옹씨가 한 말이다. 그녀는 스페인 정부에서 IOPC를 상대할 때 협상책임자였다. “개개인이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경제전문가들이 나섰고, 입증자료를 위해 정부차원의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었어요. IOPC는 자신들이 원하는 근거자료가 개인에게 없으면 보상을 못해준다고 할 겁니다.” 스페인 정부는 기름유출 사건이 있은 후 9일 만인 11월 22일 특별법(Real Decreto)을 만들었다. 그 후 프레스티지호 사건과 관련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특별법(Real Decreto)을 발표했다. (2002년 11월 22일, 2002년 12월 13일, 2003년 6월 20일, 2003년 8월 1일, 2003년 9월 3일 2003년 12월 12일, 2004년 4월 27일, 2004년 7월 2일, 2005년 3월 11일)
선보상을 통해 주민지원에 나섰으며 난파된 배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기름 14,000톤도 다시 건져 올렸다. 이 단일 사업을 위해서만 10억 유로(약 1조원)의 비용을 지출하였다. 기름 유출 지역을 보호지구로 묶어 어업을 금지 시켰을때 어민들조차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정부는 어업이 금지된 기간도 영업일수로 계산해 보상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어업 금지기간이 끝나자 새롭게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전보다 큰 고기들로 바다는 되살아났다. 스페인 정부는 각고의 노력 끝에 IOPC 배상한도액을 3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당시 이 1조원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가 보여준 현란한 개인기와 순발력의 승리였다.  

우리 배가 그곳에 있다.

스페인 정부 또한 사건 초기 보인 대응은 미숙했다. 사건 자체를 은폐•축소하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기름을 흘려 내보내고 있는 프레스티지 호를 가급적 멀리 보내려고도 했다. 이것이 사건을 악화시키는데 결정적이었다. 가까운 항구로 대피시켜 제어하려 했다면 배가 두 동강이 나서 난파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해상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레스티지 호 선장의 구조요청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자마자 그린피이스 활동가들은 현장으로 갔다. 그린피이스 전매특허인 배를 띄워 현장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했다. 정부는 초기 기름유출이 위험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반면 그린피이스는 정부가 사실을 왜곡 보도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배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지적할 수 있었다. 그린피이스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중앙정부는 이후 그린피이스에게 자신들 발표내용을 미리 확인받았다. 마리아 캠페인 팀장은 이야기한다. “정부가 보여주었던 피해자에 대한 빠른 보상과 환경복구를 위한 노력은 물론 높게 평가하지만, 그것은 이런 시민단체들의 압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WWF-스페인은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자 전문가 팀을 현장으로 보냈다. 이들이 가진 기름유출사건 전문성과 경험이 적절히 활용되었다. 초기에는 지역 수의사들과 함께 생태계 복원에 주력했다. 그들은 ‘죽음의 해안’이라는 자료집을 속히 제작했다. 갈라시아 지역이 가지는 생태학적 가치를 브로셔를 통해 알렸다. 언론은 이를 인용해 현장이 생태계의 은행임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위험에 처한 해저 생물종들을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도 제작했다. 40여명의 해양전문가와 협력해서 ‘조류와 어류의 보호와 방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런 활동들이 누적되었고 그들의 전문성이 인정받게 되었다. 유럽의회의 활동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유럽의회는 갈라시아 해안, 지브롤터 해협, 카나리아 제도와 포루투칼까지 아우르는 어업보전지역을 설정하게 된다. 라울 가르시아는 이를 위해 유럽의회 청문회장에 섰다. 기름유출 사건 6개월 정리 보고서를 요약•정리해 발표했다. 이는 항해시스템의 전환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되었다. 배가 운항할 때 육지에서 11km 이던 거리제한이 150km로 늘어났다. 어업보전지역을 설정하고 거리제한을 둘 때 한국정부가 러시아와 일본과 함께 가장 큰 반대를 했단다.



갈라시아 생태연합(Federacion Ecoloxista Galesia)은 라코루나에 있는 풀뿌리 환경단체다. 이 지역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만큼 해양학과 관련해서 University of Santiago de composteia 등 유명한 대학들이 있다. 사고 후 대학마다 자체적인 조사를 벌였으나 결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쉽게 찾지 못했다. 정부에서 조사 결과 발표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갈라시아 생태연합은 학계와 끊임없이 미팅을 가졌다. 언론을 통해 이 결과를 알려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해안가로 밀려든 기름을 채취해 성분검사도 했다. 조사결과 이 기름은 유럽에는 반입이 금지되어 있는 유류폐기물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방제작업에 나섰던 자원봉사자들이 어지러움 증을 호소하고 쓰러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런 위해 물질에 노출될 경우 어떤 인체피해가 예상되는지에 대한 갈라시아 생태연합은 역할이 필요했다. 한편 Birds Life와 함께 조류병원도 운영했다. 기름은 새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기름에 노출된 후 가까스로 살아남는 것은 개체수가 많은 것이었고 멸종위기에 처한 것일수록 기름에 더욱 민감했다. 기름유출사고 후 자취를 감춘 조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라오 이베리카다. 갈라시아 생태연합은 중앙에 있는 그린피이스와 WWF와 함께 공조체제를 이루며 사고 책임자들을 고발하는 등의 법적 활동도 벌였다. 이들의 활동은 눈까 마이즈(Never Again) 라는 거대한 시민운동으로 들불처럼 타오르게 된다. 시민단체, 정치조직과 정당조직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은 대 정부 압박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갈라시아 생태연합의 에밀리오 롤로씨는 이런 환경단체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환경단체가 없었다면 정부는 초콜렛을 싣고 가던 배가 난파되어서 그것을 청소해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언론 또한 그 사실을 그대로 전했을 것이고.”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또 다시 혹독한 겨울이 왔다. 주민피해조사를 어느 정도 마친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 공익소송 대리인단은 이제 IOPC와 대면해야 한다. 소속 변호사들은 지금까지 해 온 어떤 소송보다도 힘든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무허가 맨손어업자들을 위한 손해배상기준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이들 대부분은 회계장부가 없다. 이들을 위해 입증자료를 만들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단다. 사실 기준을 만들고 피해 범위를 산정하는 것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전문가를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은근슬쩍 넘어왔지만 따지고 보면 정부 잘못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초기 사고 상황을 잘못 판단해 기름확산 예측에 실패했다. 방제작업을 위한 지휘 체계가 혼선을 빚어 해양경찰청과 충남도는 따로 놀았다. 지역과 기상을 고려한 방재 매뉴얼이 없다보니 초동대처에 실패했다. 기본적인 방제장비도 지급하지 않은 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을 방제작업으로 내몰았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호흡곤란과 어지러움 증을 호소했다. 정부가 별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이들 책임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겐 압박감을 느끼며 눈치를 볼 대상이 없다. 그러는 사이 마을 공동체는 보상금을 둘러싼 갈등으로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 뒷전으로 밀려나고 초등학생마저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한 설문조사가 보여주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무려 72.3% 주민이 기름유출 사태 이후 자살충동을 느꼈단다. 이와 중에 태안군은 날마다 축제다. 일회성 이벤트로 일관하며 그들만의 행정을 벌이고 있다. 주민의 삶을 더욱 도탄에 빠트리는 일이다. 서해에 기름폭탄이 터진지 1년. 그동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기억이란 물론 엷어지고 멀어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기억을 선명하게 해두어야 한다. 똑 같은 과거가 반복되고 있지 않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눈까마이즈! 결코 다시는!’이라고 외쳤던 다짐이 새삼 가슴에 닿는다.

-이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