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기오염소송 1심 ‘원고 패소’ 판결

2010년 2월 5일 | 활동소식

오늘 또 하나의 역사적인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서울대기오염소송(배출가스금지청구등)이 그것이다. 선고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대기오염과 교통정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서울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이었다. 본인이나 가족 중에 천식이나 아토피 같은 환경성질환자가 있는 가정이라면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다. 지난 2007년 2월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천식 등 호흡기질환자들은 대한민국 정부, 서울시, 그리고 자동차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들은 소장에서 천식이라는 환경성질환의 발병 및 악화의 원인으로 심각한 대기오염을 꼽았다. 대기오염 관리주체인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원인제공자인 자동차 회사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약 3년 동안의 치열한 법정 공방이 끝나고 오늘 민사합의 제14재판부는 원고패소라는 선고를 내렸다. 법원은 원고패소의 이유로 입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입증을 달리한다면 다른 결론이 나왔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겼다. 서울대기오염소송과정에서의 주요 쟁점을 추려보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듯하다.

인과관계

소송의 백미는 대기오염과 천식간의 인과관계의 문제였다. 이는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원고들이 대기오염으로 인해 천식 등의 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하는 문제이다.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논문들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였다. 그 중에서도 동경대기오염소송에서 핵심자료로 인용되었던 치바대 연구결과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치바대 조사는 치바현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추적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는 도로변에서 가까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일 수록 천식 유병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이 대기오염에 민감해 공기가 양호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과 비교해 최대 6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들이 있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엄격한 수준의 대기환경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권고하고 있다. 천식의 발병원인이 대기오염이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악화의 원인이라는 점은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대한민국 정부와 서울시에게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한 역학조사를 제안하였다. 대기오염의 개선과 사전예방의 의무가 있는 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기본적으로 원고들에게 있다며 거부당했다.


대기오염의 원인

서울시 대기오염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방 또한 거셌다. 자동차가 대기오염의 원인제공자라는 원고들의 입장과 황사 또는 실내대기오염이 주요 원인이라는 자동차회사 측의 의견이 서로 대립되었다. 논란의 불씨는 환경부에서 발표하고 있는 대기오염물질 통계자료에 발생했다. 환경부는 그동안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주요물질이 전체 비중에서 60~70%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해왔다. 2008년 감사원 조사에서 도로상에 존재하는 비산먼지가 빠져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자동차에 대한 비중이 지나치게 높게 산정되었다는 것이다. 대기환경학회 토론회에서 기존에 사용되던 분산모델이 아닌 수용모델을 통한 대기오염의 기여도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 자동차가 대기오염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10% 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인체유해성 측면에서 이 부분들을 반박했다. 같은 먼지라 하더라도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먼지가 더욱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직접 배출되는 가스상 물질들이 더욱 미세하여 호흡기와 폐 속에 더욱 싶게 흡착되기 때문이다. 원고 측 소송인단은 수용모델의 조사방법론에 대해서도 지적하였다. 현재 실험적으로 수용모델을 통한 조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기에는 여러 한계들이 있다는 것이다. 샘플링 수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서울처럼 대규모 공단이 없는 대도시에서 자동차가 대기오염의 주요원인이라는 것이다. 인체유해성을 따졌을 때 자동차 배기가스가 가장 심각하다는 것이다.

(c) 이재구- 서울대기오염소송 간사 이영기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도로 및 교통정책 비판

우리나라의 도로정책은 공급일변도이다.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도로관련특별회계를 마련하여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결법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도로는 결국 더 많은 통행량을 불러와 문제를 원점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브라에스의 역설(Braes’s Paradox)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런 구시대적 방법이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건설을 둘러싼 토건족들의 이해관계가 사회적 힘으로서 제도화 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선진국에서는 이 때문에 수요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교통정책을 세운다.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거나 주차시설 등의 교통편의시설을 줄이는 방식이다. 초기에 직면할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은 하나의 패턴으로 정착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란게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도로가 마비되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지하에 대심도를 만들어 공급위주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이번 판결이 이런 교통정책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길 기대했다.

자동차 회사들에 대한 책임

자동차회사의 법정 대리인은 자동차 회사가 우리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설명했다. 중추 기간산업으로 우리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로 인해 수혜를 입고 있고, 앞으로도 자동차 사업은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동차업계는 그동안 국가에서 부과하고 있는 배출가스기준을 성실히 맞춰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하지만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자동차회사들은 사전에 자동차배출가스의 인체 유해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배출가스저감기술 개발을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통행으로 인한 대기오염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었다. 1970년대 신문을 보면 미아리 고개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매연이 심해 집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당시에는 매연단속을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76년 12월 2일 조선일보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온다. 매연단속에 적발된 차량중 30%가 76년산 새차라는 것이다. 신문은 자동차회사에게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동차회사의 주장처럼 업계가 관련 법률을 모두 지켜왔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향후 자동차 회사의 책임문제는 결국 배출가스저감기술 개발과 관련된 문제로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용과 내수용 자동차의 성능이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특정시점에 어느 정도의 기술개발이 가능했지만, 자동차회사들이 그것을 게을리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c) 이재구-녹색법률센터 소장인 우경선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서울대기오염소송단은 대기오염에 대한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 소송을 제기하였다. 서울의 대기오염이 심각하다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지를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개인의 책임으로만 되어 있는 천식 등 환경성질환에 대한 치료부담을 우리사회가 나누어 져야하는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소송단은 기자회견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에겐 이 곳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이곳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천식과 아토피 같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서울의 잘못된 교통체계와 대기오염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의식있고 주체적인 천식환자들을 원고로 모집합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끝 모를 팽창,’ ‘교통체증의 심화,’ ‘새로운 도로의 건설과 대기
오염의 악화’ 그리고 호흡기질환의 증가,‘ 라는 악순환의 문제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원고들이 기
대한 것처럼 재판부는 거대한 확장과 팽창의 흐름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던 것이다. 서울대기오염소송단
은 이 물음에 나름의 답을 제시하기위해 두 번째 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글: 김 혁 정책팀장

* 본 원고는 오마이뉴스 2010년 2월 3일로 “서울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이들의 선택”으로 게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