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설렘이 아닌, 현실 속의 감사함(인턴후기-김기준)

2016년 9월 29일 | 활동소식

2016년 6월 27일,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이 시작될 즈음 ‘녹색법률센터’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군 전역 이후 늘 방학은 계절학기 학점 이수와 영어 공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학에는 계절 학기를 뒤로 하고 녹색법률센터에서 여름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군 복학 이후 뚜렷한 방향 없이 이 곳 저 곳에 벌린 일들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 어느 것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다. 무기력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방 안에만 틀어박혔고 학사경고까지 받게 되었다. 스스로 하고 있는 공부에 믿음과 당당함을 잃어가고 있을 때쯤 대학생 대상의 인성교육 프로그램(멘토링)을 접하며 생각의 전환을 맞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호하게 느껴졌던 그 말이 하루하루 보내며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꼈고 도덕적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먼저 친환경적인 행동을 시작했고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의 일부인 ‘그린리더십’ 과목과 ‘지속가능한 사회와 제도’ 수업을 수강했다.
 
환경 관련 과목을 수강하고 과제를 수행하며 느낀 점은 먼저 우리 사회에 쌓여있는 여러 가지 문제(노동 문제, 성차별 문제, 교육 문제 등)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행동, 즉 삶의 개선을 위해서는 제도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환경영향평가제도나 환경소송 등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볼 수 있는 곳, 인식 개선 수준을 넘어 제도 변화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에서 나의 진로를 찾아보고 싶어 녹색법률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운 좋게도 녹색법률센터에서 ‘예비법률가와 함께하는 환경분쟁지역 톺아보기(이하 톺아보기)’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를 필요로 하고 있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톺아보기는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환경분쟁지역을 답사하면서 피해주민과 뭇 생명들의 아픔을 몸으로 체험하며 생태감수성을 높이고, 이와 동시에 법적 쟁점까지 함께 살펴 리걸 마인드를 키우고자 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환경소송이 있었던 홍천, 용인, 밀양, 청양에 직접 가서 지역 주민 분들과 함께 실제 현장을 답사하고 소송을 맡았던 변호사님들과 함께 법적 쟁점에 대해 토론해보는 것이었다. 3박 4일 동안 강원도부터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를 거쳐 전국을 순회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학교 수업을 통해 느꼈던 문제의식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전문가와 토론할 수 있다는 마음에 내심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설렘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정집을 개조한 녹색연합 본부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센터의 형편이 현실로 다가왔다. 전국 로스쿨에 홍보했지만 참여한 로스쿨생은 6명뿐이었고, 수가 적어 버스도 구하지 못해 8명이 8인승 스타렉스에 몸을 싣고 배영근 변호사님이 3박4일 내내 운전해야할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그램 진행이 결정되었으나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다. 첫 날,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피해 차에 탄 얼굴들에는 ‘잘 진행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눈빛이 섞여있었다.
 
설렘은 싹 가신지 오래였고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변호사님을 보조해야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장 답사, 면담, 강연, 식사, 회의 자리 모두 향후 프로그램 결산을 위해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3박4일 동안 4개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매일 다른 지역에서 숙박을 했는데, 저녁에는 가장 늦게 잠이 들고 아침에는 가장 먼저 일어나서 식사할만한 곳을 찾아봐야했다. 준비물을 잘 챙겨서 내가 필요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먼저 찾아서 제공해 주어야했다. 사실 나는 프로그램 이전에 DSLR 카메라를 조작하는 법도 몰랐고 아침 잠이 적은 편도 아니었다.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친환경적 삶을 좀 더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사진을 좀 더 예쁘게 찍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준비물을 함께 챙겨주거나 장비 조작이 서투른 나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던 것처럼 프로그램 참여자 분들도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잘 나온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일정 중간 중간 필요한 물건을 챙겨줄 때마다,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감사함으로 나의 마음을 바꿔준 이들은 프로그램 참여자 분들뿐이 아니었다. 실제 현장을 답사하며 만난 주민 분들은 우리를 환대하며 사건의 개요와 쟁점을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주민 분들 모두 각 마을의 뒷산, 공기, 논밭을 지키기 위해 덩치 큰 회사와 수 년 째 소송을 이어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당연한 것처럼 그 자리에 늘 있어왔던 주변 환경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모든 걸 걸고 싸우고 있었다. 해당 사건을 좀 더 알리고 피해자 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현장에 찾아갔지만, 오히려 그 분들은 더 많은 지식, 경험, 그리고 더 큰 절실함으로 임하고 계셨다. 골프장을 지으려다 중단되어 봉분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채 모두 파헤쳐진 강원도 홍천군 구만리, 폐수 배출 사실을 속이고 혼화제 연구소가 지어질 뻔했던, 학교와 주민들의 마을 뒷산인 용인의 부아산, 비산먼지로 인해서 논과 마을 주민들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청양군의 폐기물처리장, 그리고 그림 한 폭 같이 아름다운 산자락에 얼룩진 것처럼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을 둘러보며 늘 가슴 속에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국 곳곳의 땅이 그곳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파헤쳐지고 망가졌고 그 책임은 온전히 그 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들의 절실함에 대해 ‘내’ 아파트 집값, ‘내 가족’의 건강문제, ‘내’가 가진 땅값으로 인한 것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그들 각각의 ‘나’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민 분들의 마지막 당부에는 늘 ‘우리’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신이 포기하면 모두가 포기하고 결국 다른 지역, 후대 세대에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하셨다.
 
프로그램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료 리서치 업무와 재판 방청 등을 하면서도 감사함을 잊을 수 없었다. 주된 업무는 발전소 주변의 피해나 토지강제수용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 등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기실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않는 이상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환경에 겸손하기 위해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은 사무실에서 땀을 흘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찾아내려는 변호사님의 모습과 단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실마리를 찾아보려 애쓰는 녹색연합 활동가 분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밀려왔다.
 
인턴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그린 환상 속에서 멋진 일을 할 것이라는 설렘 속에 빠져있었다. 직접 대면한 현실은 쉽지 않았다.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한 환경관련 제도의 변화는 요원해보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았고, 감사함이라는 정말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두 달 동안의 녹색법률센터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내 자리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하고 있다. 용돈을 쪼개 작지만 매달 녹색법률센터를 후원하기로 했고, 에너지 문제 관련 수업을 들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녹색법률센터에서 배운 감사함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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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김기준 인턴이 프로그램 마지막 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수없이 늘어져있던 송전탑을 바라보는 배영근 변호사를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