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환경인사이드] 대한민국 환경변호사로 사는 법

2017년 4월 7일 | 녹색칼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필자를 소개할 때 ‘환경’을 주 업무로 하는 변호사라고 설명하면 거의 예외 없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질문이 돌아온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거냐’는 질문과 ‘환경으로 밥벌이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게재하게 될 이 지면의 첫 번째 이야기로, 항상 어렵게 설명해야 했던 ‘환경변호사’의 업무와 생활에 대해 소개해 보려 한다.
필자는 환경팀이 잘 갖추어진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전국의 공장을 무수히 다니며 공장의 법령준수(Compliance)와 환경 위험(Risk)을 점검하는 업무를 했다. 그런 업무들을 통해 공장의 구조와 생산공정을 배웠고, 평생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안전모와 안전화가 액세서리나 하이힐보다 익숙하던 시간을 보냈다.
자주 공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 때부턴가 기업 본사의 법무팀보다 공장의 생산담당자나 환경안전팀과 말이 더 잘 통하고, 주기율표도 못 외우던 문과생이 학창시절에는 멀리하던 화학 공부를 하기 위해 뒤늦게 EBS 수능 강의를 들으며 화학물질과 반응, 물질수지(mass balance)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정거래’ 변호사가 경제학 이론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듯이, ‘환경’ 변호사 역시 원료물질이 투입돼 제품이 되는 과정(생산공정)과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나 폐기물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소양’은 필자와 같이 과학적 교양이 부족했던 인문계 출신 변호사에게는 ‘도전’이 되고 과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 변호사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지식과 배경보다는 환경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낯선 분야라도 묻고 배우려는 열의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누군가 환경법의 특징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의 중요한 내용이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부령·고시에 규정돼 있고, 이들 하위규정은 수시로 변경돼 부지불식간에 뒤통수를 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기업들이 환경법을 제대로 준수하도록 자문 역할을 하는 경우라면, 수시로 대한민국 관보와 환경부 입법예고를 확인해 법령의 변화를 꼼꼼하게 챙겨야 실수(malpractice)를 막을 수 있다.
환경규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리의 영역이 넓어지고 관리의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관리대상물질이 추가되거나 관리지역이 추가되는 경우에는 그 이전부터 운영되던 기존 시설들이 새로운 규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과규정’을 통해 일정한 적응기간을 부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에 특정수질유해물질로 추가된 ‘펜타클로로페놀’과 같이 기존에는 수질오염물질로 관리되지 않던 물질을 배출하던 업체들은 법령이 정한 기간 내에 그 물질에 대한 인·허가를 완료하고 저감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 기간 내에 조치하지 않으면 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공장들로 하여금 해당 물질의 배출 여부에 대해 시험검사를 의뢰하도록 하고 그 물질이 확인되면 기한 내에 배출시설 인허가와 방지시설 연결을 완료하도록 조언해야 한다.
이처럼 법령의 변화와 규제영역의 확대를 미리 알고 조언하지 않으면, 환경법 위반이 발생해 공장 담당자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사업장이 사용중지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항상 ‘오늘’을 기준으로 정보와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내일’의 변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긴장감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환경소송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사법 시스템과 소송법 체계하에서 환경피해의 사법적 해결방안을 고민하다 보면,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인과관계 입증’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행정소송에 있어서는 ‘원고적격과 처분성’이라는 단단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해외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창의적인 환경 사건들. 예를 들어, Urgenda(우르헨다)라는 환경단체가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더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라며 소송을 해 승소한 사건(Urgenda case), 미국의 청소년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탄소 감축 관련 규정 제정을 소구해 몇 개의 주 법원에서 승소한 사건(Our children’s trust case)은, 시민소송(Citizen Suit) 제도를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엄격한 소송요건과 법원의 사법소극주의라는 환경하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환경변호사들에게 아직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결국 입법적으로 집단소송과 시민소송 제도를 도입해 환경피해의 사법적 구제 가능성을 넓히고, 스스로 창의적이고 새로운 환경소송 유형을 개발해 소송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앞으로 필자를 포함한 환경변호사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될 것이다.
* 이소영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환경과 에너지 분야를 주요 업무분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환경 전문 로펌인 법률사무소 엘프스(ELPS)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환경법학회의 이사로 참여하며 환경법 연구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ELPS는 Environmental Law, Policy and Science의 약자로, 환경법은 정책과 과학의 종합적 이해가 필수적인 분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http://www.hkbs.co.kr/?m=bbs&bid=special25&uid=420476
* 본 글은 ‘환경일보’에 기고한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이소영변호사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