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걸레 모셔오기

2017년 10월 16일 | 녹색칼럼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다. 동네 앞 신작로에 읍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 3번 다니는 외딴 곳이었다. 초저녁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 하시는 어머니 무릎 팍에 매달려 문풍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에 졸음이 쏟아졌는데, 읍내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쏘아대는 불빛에 방안이 환해져 놀라 깨면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며 등을 도닥여주셨다.
 
우리 집은 낡은 초가집이었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방걸레질을 하셨고 끼니때마다 정지(부엌) 부뚜막과 가마솥 뚜겅을 행주로 훔치셨는데, 단 하루 어긋남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戒(계)이자 儀式(의식)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으로 우리 집은 이웃집과 달리 정갈하였고, 나 역시 그 의식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행주, 걸레와 친해졌다.
 
지금 우리 집에는 행주와 걸레가 없다. 주방에서는 행주대신 키친타올을, 거실청소에는 부직포나 두루마리 휴지를 쓴다. 그 소비량이 만만치 않다. 이 문제로 20년 이상 아내에게 대들었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내상만 입었다. 행주, 걸레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살아있는 권력에 반항하면 죽는 수가 있다.
 
나는 행주, 걸레가 있어야 집이 깨끗하다는 생각인 반면 아내는 그 자체가 불결한 까닭에 행주, 걸레를 집안에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내는 노동과 소비의 선택문제로 이해한다. 행주, 걸레를 빨고 삶느니 키친타올, 휴지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말다툼 끝에는 대개 ‘자기가 언제 명품가방을 사달라고 했느냐’ ‘키친타올, 휴지조차 마음껏 못 쓰느냐’ ‘집안일 당신이 해라’며 울분을 토한다. 내가 패배한 이유다.
 
그러나 키친타올, 걸레를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내 생각은 확고하다. 경제적으로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것과 그 소비행위가 정당한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경제를 활성화하여 모든 이들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키친타올, 휴지 가격이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키친타올, 휴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나무를 죽여 추출한 펄프로 만들어진다. 값싼 키친타올, 휴지는 산림자원을 훼손한 결과물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사람들이 사용가치를 위해 제품을 구입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체계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없던 사용가치를 꾸며내고,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른 상품을 쏟아낸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의해 제품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조작된 사용가치와 주입된 선호를 위해 주머니를 연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하는 기호가치를 위한 소비가 바로 이것이다. ‘쓰고 버리는 세상’인 것이다. 키친타올, 휴지에 어떤 사용가치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키친타올, 휴지 없이 인류는 수천 년을 살아왔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필연적으로 대량폐기를 야기한다. 한국인 1명이 70년 동안 배출하는 생활쓰레기가 55톤이라는 통계가 있다. 저개발국가들이 유효수요 급증으로 선진국 수준의 소비행태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생활 쓰레기가 대륙과 바다를 뒤덮을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세계 주요 권역별 14개국, 159개 지역 수돗물 성분조사 결과 전체 샘플의 83%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된 이유는 매년 3억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지만 전체의 80% 가량이 매립되거나 방치된 이유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는 소비를 본질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 자기 밖에 존재하는 세상(자원, 동물, 식물, 타인의 돈)을 착취하는 것이 소비이기 때문이다. 생존 이후 대량폐기로 세상을 오염시키는 짓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은 공중화장실에서만 적용될 말이 아니다. 쓰레기를 남기러 태어난 게 아니라면 살아가는 자리를 깨긋이 할 일이다. 최소소비가 답이다. 웰빙, 힐링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혐오하는 내가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추석을 보내고 아내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하였다. 명절에 고생한 주부 어깨결림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효험이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행주, 걸레가 집으로 온 것이다. 가족 소비행태에 변화만 있다면 얇야진 내 지갑은 위로받을 것이다.
글 :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법무법인 청솔, 박근용 변호사  ghan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