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마한얼 변호사의 여행이 좋은 100가지 이유

2021년 8월 5일 | 활동, 활동소식

 

뜨거운 폭염과 전례 없는 4단계 방역조치에도 여름휴가철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피서지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있다 보니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이들이 전에 비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사단법인 두루 구성원 소개 페이지에서 녹색법률센터 회원이신 마한얼 변호사님께서 여행이 좋은 이유를 100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신 것을 보게 됐고, 마음껏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요즘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마한얼 변호사님(이하 변호사님)을 뵙고 왔습니다.

 

 사단법인 두루 마한얼 변호사 (사진-녹색법률센터)

 

변호사님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땐 대학생 형누나들의 보살핌을 받기도 했고, 대학생 시절에 4-5개월에 걸쳐 유럽, 인도, 아시아 지역 여행을 하고 나서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호사님이 생각하는 여행의 첫 번째 장점인 것 같습니다.

 

“여행이 좋은 점은 짐을 줄이는 연습을 할 수 있단 거예요. 질 수 있을 만큼의 짐만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죠. 여행 동안 한 번 쓸까 말까한 물건들을 줄이고 내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을 들고 다니면서 짐 줄이는 법을 익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다가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물건을 건네줬어요. 나는 짐을 줄이고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어진다면 그 물건의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인생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기도 했어요.” – 여행의 두 번째 장점

 

“또 좋은 점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일정들을 내가 내 손에 올려놓고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거였어요. 서울에서는 그 일정을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데 여행을 하면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불확실성 덕분에 내 욕심이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물론 한국에 오면 회복되긴 하지만(웃음)” – 여행의 세 번째 장점

 

“처음 여행갈 때는 한국의 복작거리는 사회를 떠나기 위해 가려고 했어요. 근데 가보니까 내가 밖에서 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여유로워 보였단 것을 알게 됐어요. 결국 그 공간도 누구에게는 복작복작한 일상인거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똑같다는 점에 위로를 얻어요.” – 여행의 네 번째 장점

 

 

 

이후엔 저희가 질문을 드리는 방식으로 변호사님의 여행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행 계획을 빡빡하게 잡진 않으시나요?

“목적지만 정하고 목적지까지 언젠가는 간다라는 생각으로 정해요. 기차나 운송수단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맞추긴 하지만 꼭 몇 월 며칠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죠. 목적지에 도달하고부터는 하루 종일 걸어다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게 다니는 편이죠. 이상하게 여행을 가면 계속 걸어다니게 돼요.”

 

국내 여행도 많이 다니셨나요?

“시간 날 때마다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오고는 했는데 지도에 색칠을 해보니 70% 정도는 다녀온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시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국내에서는 전남 쪽, 남도를 좋아해요. 음식도 맛있고 자연환경이 좋아요. 보성이나 하동 화개장터 쪽 섬진강 길을 가까운 기회에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해외는 터키를 좋아하는데 터키에서 재밌는 일이 많았어요. 형제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같이 피자 시켜 먹고 그런 것도 좋았습니다. 파묵칼레라고 하는 석회암지대 하얀색 온천을 보러 간 것도 좋았어요. 생각보다 금방 관람해서 근처에 다른 관광지를 가려는데 걷기엔 너무 먼 길을 오토바이 타고 가는 사람이 태워주셨어요. 와인을 가방에 넣어서 들어주는 대신 태워주셨죠. 도착했더니 서빙하는 일을 부탁하셔서 주문받는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터키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어려워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곳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는데 여행사 사람이 자기 회사보다 저렴한 회사도 알려주고, 본인의 장사와 상관없이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인상 깊었어요.”

 

변호사님도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는 능력이 있으신가 봐요!

“여행가서는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관심 없어서인지 경계나 긴장을 조금 덜 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 여행의 다섯 번째 장점

 

안 좋은 일을 겪은 적은 없으신가요?

“캄보디아에서는 산적 같은 사람들이 통행세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안내해주는 분이 알아서 해결해주셨고, 인도에서는 여행사에 기차 티켓 값을 비싸게 지불해서 나중에 환불 받은 적도 있었어요. 사기를 치고 적반하장인 사람들을 만났죠.”

 

그런 일들을 겪으면 사람이 싫어진다거나 하진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모로코를 갔을 때도 사기를 당해서 빨리 모로코를 떴어요. 그런데 대부분 안 좋은 기억이라기보다 이런 곳에서 내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남았어요. 오히려 인도에서는 사기 당했던 경험보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이 더 큰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나쁜 일을 빨리 잊는 것 여행의 여섯 번째 장점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있으신가요? 언젠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으시다고요.

“개마고원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어요. 래프팅도 할 수 있고 일 년의 반 정도는 보드랑 스키도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장사가 잘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옆에 사무실 차려놓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법원 왔다갔다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세 명 정도 같이 운영하면 열흘씩만 가게를 보고 20일은 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통일이 요원해서(웃음) 기후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점점 줄고 선선한 곳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러 대륙을 여행하면서 아름다워야 하는 경관이 기후위기 등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보게 됐는데 지구환경이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단 걸 실감할 수 있었고 그런 면에서는 교육적 효과도 있는 것 같긴 했어요. 에페스 라고 터키에 있는 곳인데 항구 도시였던 곳이 해안선이 뒤로 후퇴하면서 완전히 평야가 됐는데,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지구의 변화가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의 일곱 번째 장점

 

여행 경험들이 변호사 활동에 도움이 되셨나요?

“전 두루에서 아동, 이주민 관련 일을 하는데 다른 변호사님들처럼 수익을 올리는 일은 아니어도 먹고 사는 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관찰을 통해 얻은 통찰력도 있었던 것 같구요. 예를 들면 모로코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동이 본인의 형제가 혼나는 모습을 보고 해머를 끌고 와서 동네 아저씨한테 휘두르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충분히 공공 영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면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위험하게 보호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신뢰할 수 있는 사회라는 건 아동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돈을 쓰는 여행객으로서 환대받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도착했을 때의 낯선 기분을 느껴보았기에 막 입국한 외국인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했어요. 제일 큰 건 관점이 바뀌는 거였어요. 완벽하진 않지만 사람 만나는 일을 계속하면서 사람들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여행의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장점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 가기 전에 서울 어린이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발달장애를 잘은 모르지만 당시에 들었던 이야기는, 발달장애 아동이 느끼는 감각이 우리가 생각하는 감각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게 위협적이거나 만나서 반갑다고 웃는 표정이 화내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 등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색약이고 갈색 주황색이 헷갈려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항상 궁금한데요, 사람들마다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생각으로 그들을 보니까 이상하고, 장애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장애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죠. 비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그걸 벗어난다고 장애로 정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애초에 보는 게 다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일하는 데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 여행의 열 번째 장점

 

변호사님은 여행이 좋은 이유가 100가지는 안 되는 것 같다며 웃으셨고, 이어서 사단법인 두루 활동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분량의 한계로 인해 간단하게 전해드립니다.

 

사단법인 두루 마한얼 변호사 (사진-녹색법률센터)

 

두루에서 하시는 활동도 궁금해요!

“두루 일은 제가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어요. 주로 아동 관련된 이슈들을 많이 다루는 편이고, 청소년들도 많이 만나요. 출생신고 관련한 일을 하고 있는데,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들이 여전히 많이 있어요. 그렇게 됐을 때 학교나 병원에 간다거나 복지도 해결이 안 되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리죠. 통계에 안 잡히니까 국내에서 몇 명인지 파악도 어려워요. 출생신고는 아동보호를 위해 1단계로 필요한 작업인 것 같아요.”

 

“탈시설 관련해서도 관심이 있어요. 장애 영역에서의 탈시설 운동이 꾸준히 이루어진 덕분에 아동영역에서도 꿈꾸어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장애인 탈시설 활동가들이 존경스러워요. 시설이라는 게 복지·보호로 보이지만 사실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금 같은 느낌이 있다고 봐요.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런이런 복지서비스를 줄 수 있으니까 맞춰서 들어오라는 형태의 서비스인 거죠. 아동들에게 개별적인 서비스 제공이 어렵구요. 형제복지원 같은 사례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인권침해가 없어도 사회에서 시설에 살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목소리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노숙인, 미혼모자, 이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시설이 생기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왔던 우리 모두가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청소년 주거권 관련해서는 시설 밖에서는 결국 어디서 살 것인가, 시설이 아니어도 집에서 살기 어려운 청소년들이 집 밖으로 나왔는데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책임은 무언가 고민합니다. 탈가정을 비행, 가출이라고 부름으로 인해서 이들이 비도덕한 사람이 되고 선도의 대상이 되지만 살기 위해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아요. 어떤 형태의 보장·보호가 필요할까,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뭘까라고 했을 때 현장에서는 주거와 노동, 돈이에요. 시설 외의 선택지를 택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일단은 집이 가장 먼저 필요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들을 연결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학교든 직업 교육이든.”

 

가장 관심 있는 환경이슈는요?

“확실히 무더위인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배달알바를 많이 해서 걱정되고요. 저녁에 만나면 팔이 새까매요. 유난히 아토피가 많은데 햇빛을 쬐면 더 심해져요. 배달알바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기후위기로 인한 위기감이 제일 큰 것 같아요. 1, 2도 상승이 그냥 더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도 빨리 변하는 것이고,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것이라서요.”

 

변호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많지 않은 듯해요. 변호사가 되어서라기보다는 이 사람들과 함께 싸워서 이겼을 때, 승소했을 때가 좋은데 같이 일하게 된 좋은 분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이집트의 난민신청자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민신청자인 활동가분에게 많이 배웠고, 난민 인정받았을 때 정말 기뻤어요. 또 하나는 좋았다기보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는 점이에요. 자격증이 있다는 건 사실은 재판을 한다든가 하는 역할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에서 오래 활동하신 분들보다 지위를 선점하게 된다던지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뭐라고 다른 단체 대표님들과 만나서 법안과 정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겠어요. 오늘 같은 인터뷰 자리도 자격증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있어요.”

 

 

 

변호사님의 여행 이야기, 여행이 좋은 100가지 이유를 듣고 싶다는 연락에 흔쾌히 시간 약속을 제안해 주시면서도 ‘실제로는 100가지까지는 안 될 거예요’라며 조금은 쑥스러워하셨는데 변호사님과 긴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왜 100가지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일이 세어보지 않으셨겠지만 실제로는 100가지 이상이 되는 그 충만함과 감사함, 배움 등을 100가지라는 큰 수로 상징화하신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목소리를 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여행자의 열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시는 면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다녀오신 국가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한 것만 27개국이었는데 한 번의 인터뷰로는 모두 담을 수 없는 시간들이 ‘변호사 자격증이 있을 뿐’ 이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실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요즘 마한얼 변호사님은 코로나보다도 일 때문에 한동안 여행을 가지 못 해서 틈나는 대로 다음번에 여행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키우며 지낸다고 하십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에 제약이 많은 때에 모두 자신만의 기대와 설렘으로 건강하게 지내시길 빌어봅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마한얼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단법인 두루 홈페이지 http://duroo.org/

인터뷰 정리_권나현·김형진 인턴활동가, 이수빈·이선진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