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법 연수, 그 열흘간의 추억

2009년 10월 13일 | 활동소식

 

                                             일본 환경 연수를 다녀와서

사법연수원 36기  이 재 은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07년이다. 지난 한 해는 여느 때보다도 바쁘고 정신없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 과정이 끝이 나면서 직업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작년 하반기부터 지옥 같은 수료시험을 준비하고 직업을 찾아 헤매느라 고생했다. 나 역시 성적을 좀 더 좋게 만들기를 원했기 때문에 수료시험에 대한 부담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시험을 무사히 잘 치뤄서 연말에는 내가 원하는 로펌에 취직할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 과정은 경쟁이 치열하여 연수생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년 7월 전문기관 연수기간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 환경법학회를 통하여 다녀온 일본연수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환경법 분야에 관한 지식을 넓힘과 아울러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모저모를 구경함으로써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아오조라 재단과 여러 변호사님들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두들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

내가 소속된 환경법학회는 연수원 1년차 때는 주로 한국의 시민단체인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의 도움을 얻어 우리나라의 환경분쟁지역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말로는 환경법학회 회원이지만 환경법 문제에 관하여 모두들 새로 배우는 입장이다. 특히 ‘예비’법조인이라도 법조 특유의 보수적인 법문화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경제개발패러다임에 대항하는 환경적 가치의 중요성에 눈을 뜨는 것 만해도 큰 수확이라고 우리 스스로 평가하였다. 2년차 때는 좀 더 이론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마침 우리 사법연수원에서는 해외연수를 적극 장려하고 약간의 보조금도 지원해주어, 환경법 분야에서 많은 소송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일본에 가 보기로 하였다. 이미 재작년에 우리 선배들이 방문하였던 곳이기도 하여서 더욱 기대가 컸다.

우리의 10일이라는 길지 않은 연수기간은 그야말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먼저 오사카에서는 공해재판, 자연보호 재판, 석면소송, 폐기물재판, 약해재판 등을 주제로 한 일본의 저명한 변호사님들의 강의를 경청하고 그에 관하여 활발한 질의와 토론을 벌였다. 또 동경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경성 국장을 만나 그 입장을 들어보는 기회와 신 요코따기지 소음공해소송, 다까오 텐꾸우 재판에 관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소송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대기오염재판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여자 변호사님의 강의를 듣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들의 강의는 환경분쟁 현장에서 발로 뛰어가며 자료를 수집하고 이론을 개발하여 이룩해 낸 땀방울의 결실이어서 이론적으로 예리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감동 또한 두 배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하여 그 경제성장이 몇 십 년 앞섰고, 그 경제성장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으므로 개발로 인하여 훼손된 환경적 가치와 인권 훼손 문제가 현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일본에 뒤이어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 때문에 환경오염 예방 정책으로 미리 대비를 하여 일본의 니시요도가와 재판과 같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에 대한 배상문제가 전면적으로 부각되기 보다는 새만금, 천성산 문제 같은 개발위주의 국가 정책에 의하여 생태적 가치가 훼손되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본의 자연보호 재판이나 신 요꼬다기지 소음공해소송 등은 두 나라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배울 점이 많았다. 이렇게 일본연수를 통하여 다각도로 학습한 문제점, 환경법 이론 및 해결방법론은 우리가 앞으로 실무가로 일하면서 이용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법조인들과 친분을 쌓는 시간도 기억에 남을 추억이다. 오사카에서 물심양면으로 우리에게 신경써주신 무라마쯔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방문 둘째날 환영회에 참석해 주신 오사카 공해변호인단 소속 변호사님들. 모두들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재치있는 유머를 가지고 있는 멋진 분들이었다. 우리는 때로는 통역하시는 분을 통해서, 때로는 영어 및 바디 랭귀지를 총동원하여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웃고 즐겼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환경소송과 같은 일종의 공익활동을 기쁨으로, 또 열정을 가지고 수행하며 특히 자신이 공해 변호인단 소속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변호사들의 모습이었다. 이는 국경을 초월하여 앞으로 법조 인생을 준비하는 우리 연수생들에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했다.

우리의 동료뻘 되는 일본 사법연수생과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우리의 사법제도 및 사법연수원제도는 일본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인지 초면인데도 우리와 일본 사법연수생들은 통하는 것이 많았다. 한편, 우리는 일본에는 없다는 한국의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폭탄사’를 주고 받았다. 폭탄주는 참 독한데 일본 연수생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잘 마셨고, 말도 재미있게 했다. 내일이 민사과목 시험이라는 그들. 시험의 부담을 서로 이해했고 그럼에도 이 자리에 나와 준 것에 대하여 참 고마웠다. 그래서 우리 연수생 중 누군가 말했다. “내일 당신들의 시험에는 ‘채권자취소권’문제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자 누가 부연설명을 해 줄 새도 없이 식당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내 옆에 앉은 나랑 동갑의 여자 연수생인 스즈끼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인권문제를 다루는 로펌에 이미 진로가 확정되어 인권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녀. 우리는 서로 연수원 생활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북한 핵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도 하였으며, 둘 다 남자친구가 없으며 결혼을 급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남는 시간에는 오사카와 일본의 명소를 관광하였다. 오사까, 교토, 히메지성, 동경 등등… 일본은 오랜 역사와 발전된 현대문명이 공존하는 멋진 곳이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기뻤다. 관광을 도와준 미즈노 상이 생각난다. 한국의 지리산을 좋아한다는 그녀. 언제한번 한국에 초대해야겠다.

법률가는 어떤 문제에서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편협해서는 안 된다. 관련된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듣고 자신의 모든 판단력을 동원하여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배우는 자세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환경법 분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이다. 그리고 한국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아직 개발패러다임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 앞서 몇 십년동안 환경에 관한 갖가지 문제를 몸소 체험하고 환경적 가치를 조금씩 회복하는 방향으로 대처해온 일본의 환경법 이론가들을 찾아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아무리 사소한 경험이라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이제 법조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한국의 법률문화를 이끌어갈 우리가 일본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하나는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동아시아의 환경을 위협하는 문제를 주제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할 그 날을 상상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