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3일 오후 2시. 비가 내린 후 쌀쌀해지는 날씨였으나 태안주민들은 행사 시작 30분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 태안문예회관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난 1월 6일 서해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 지원 특별법 공청회가 열렸던 이 자리에 기름 묻은 방제복을 입은 채, 손에는 피켓을 들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 걸음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문예회관 1층 현관에서는 참석자들에게서 서명을 받았다. 기름유출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삼성중공업을 고소하고 고발하는 서명용지였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는 누구나 할 거 없이 줄을 서가며 고소/고발인 용지에 분주하게 서명을 했다.
5분 정도가 지난 2시가 되자 행사장은 더이상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연단에 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연이은 노진웅 위원장(태안읍 유류피해대책위원회) 발언에따르면 이들은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 민초들을 지켜주는 정의로운 분들’이라고 설명되었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노 위원장의 평가를 듣고 있는 이들은 바로 ‘삼성중공업 유류오염사고 공익소송대리인단’ 이었다. 공익소송대리인단 구성원들은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환경운동연합 환경법률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구성원들로서 지금까지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법률대책회의’ 핵심멤버들이다.
‘법률대책회의’는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후 거의 모든 언론과 시민사회가 방제작업에만 몰두해 있던 사이 이 사회와 지역주민이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왔다. 삼성중공업의 중과실 책임을 무게감있게 가장 처음으로 제기하였고,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나오던 보상 혹은 배상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들을 바로 잡기 위해 태안읍에서 ‘공익법률상담소’를 운영해왔다.
법률대책회의가 이 시점에 왜 공익소송을 준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남현우 변호사(민변 대전충청지부 부지부장, 법학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1월 공익법률상담소 활동 때부터 주민으로부터 사건 수임에 대한 요청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통합대책위의 구성이 더욱 시급한 문제였고 개별적인 사건수임은 통합 대책위 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까지는 ‘통합대책회의’ 에 법률자문만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현재시점에 지역별•업종별 대책위 단위로 로펌들과의 수임계약이 이루어지고 있고 어느 대책위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그 어디에도 하소연 하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는 이분들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공익소송대리인단’ 구성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기존에 다른 법률회사와 이미 계약을 체결한 대책위였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수협 조합장은 “우리와 계약을 맺은 변호사사무실이 국제기금을 상대로 소송을 해본 경험이 한번도 없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비용은 어찌나 많이 불렀던지. 나중에 주민들이 이런 내용을 알게 되면 큰일입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공익소송대리인단’ 참여 변호사들이 지금까지 해온 환경소송 사례들을 보면 놀랍다. ‘대산나프타 폭발사건, 천수만 어업권, 군사격장 설치승인 무효확인소송, 해사채취불허가처분 취소소송, 해양오염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 새만금소송, 경인고속도로변 소음피해소송, 북한산관통도로 공사중지가처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변 소음피해소송, 군산미군기지 소음소송’ 등 국내 환경소송의 역사는 이들에 의해 쓰여 졌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하지만 ‘공익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지금까지 해온 다양한 공익환경소송 경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작 ‘공익소송대리인단’ 이 자랑하는 부분은 바로 국내 최고의 환경피해 조사단과 손해사정인단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전승수 교수(생태지평연구소 소장, 전남대) 가 조사총괄을 맡은 환경피해조사단과 나기환 박사(메이텍엔지니어링, 해양생물학 박사, 수산해양기술사)가 참여한 손해사정인단은 명실상부한 드림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삼성중공업 유류오염사고 공익소송대리인단’에게는 시대가 요구하는 지상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검찰도 어찌하지 못한 ‘삼성중공업의 무모한 행위, 즉 중과실 책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길에 완전한 복구와 완전한 배상, 가해자 무한책임의 열쇠가 있다. “국제기금이 이야기 하는 배상한도 내에서 지역주민이 피해구제를 받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공익소송대리인단’은 꾸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는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과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라며 우경선 변호사(환경소송센터 소장)는 ‘공익소송대리인단’ 참여 소회를 밝혔다. 우경선 소장외에도 박서진 변호사(법무법인 정민)와 송봉섭 변호사(법무법인 한길), 전종원 변호사(법무법인 정률)가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운영위원으로 이번 ‘공익소송대리인단’에 함께 하고 있다.
글/ 환경소송센터 정책팀장 김 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