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읽기] 개발vs보전의 이익형량에 있어 환경권의 위상(헌재 1998.12.24, 89헌마214 도시계획법 제21조 위헌소원)

2021년 2월 8일 | 자료, 환경판례⋅해외사례

2021년 녹색법률센터의 1차 로스쿨 실무수습 환경소송사 특강에서 최재홍 부소장님께서 특히 강조해주셨던 판결문이 하나 있습니다. 토지의 개발 vs 보전의 대립구도는 환경 분야에서 매우 핵심적인 이슈이자,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관하여 도시계획법과 관련된 89헌마214 도시계획법 제 21조 위헌소원에서의 이영모 재판관님의 반대의견은 우리가 법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환경권을 사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토지의 개발행위는 개인의 재산권의 행사에 따르는 마땅한 권리로서 인정되어 왔지만, 이것이 반드시 공공복리를 우선시키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것을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사적인 재산권이,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앗아가면서까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영모 재판관님의 의견은 개발우선론과 환경보전론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 우리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그저 문자를 넘어 실제 사회에서 보장받기 위해서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재홍 부소장님이 발췌하신 판결문 본문>

#. 개발vs보전의 이익형량에 있어 환경권의 위상(헌재 1998.12.24, 89헌마214 도시계획법 제21조 위헌소원) – 비교형량의 적용 참조

이영모 재판관 반대의견

: 우리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수많은 기본권 규정이 있다. 이 기본권들은 본질과 기능면에서 서로 구별되므로 그 가치 또한 균일한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권(헌법 제35)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의 실현에 기초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사유재산권인 토지소유권을 행사하는 경제적 자유보다 우선하는 지위에 있다고 본다.

먼저, 환경권을 구체화한 환경정책기본법을 보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위해를 예방하고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의 적정한 관리ㆍ보전은 국민의 권리ㆍ의무임과 동시에 국가의 책무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환경의 질적인 향상과 그 보전을 통한 쾌적한 환경의 조성, 인간과 환경간의 조화와 균형의 유지는 국민의 건강과 문화적인 생활의 향유 및 국토의 보전과 항구적인 국가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국가ㆍ지방자치단체ㆍ사업자 및 국민은 환경을 보다 양호한 상태로 유지ㆍ조성하도록 노력하고, 환경보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현재의 국민이 그 혜택을 널리 향유함과 동시에 미래의 세대에게 계승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제1조, 제2조, 제6조 참조). {1992. 6. 8.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선언(Rio Declarat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27개 원칙을 보면, 환경은 국가차원을 넘는 국제문제임을 알 수 있다}

다음, 환경권에 관한 규정 외에도 국가는 국민에게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지울 수 있는 규정을 헌법에서 명문화하고 있다(122). 이 규정을 이어받은 국토이용관리법은, 국토는 모든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유한한 자원이며 공통기반임에 비추어 그 이용에 있어서는 공공복리를 우선시키고 자연환경을 보전함과 아울러 지역적 제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제1조의2 참조). 바꿔 말하면, 인구에 비하여 국토가 좁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토지의 계획적ㆍ합리적인 이용ㆍ개발 및 보전의 필요성은 긴요한 과제이고, 토지를 이용함에 있어서는 공공복리를 우선시키고 환경보전 또한 반드시 헤아려야 한다는 뜻을 못박고 있다.

헌법이 재산권행사의 사회적 의무성을 명시하는(23) 이외에, 환경권(35) 및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한 제한의무의 부과(122) 규정을 따로 두고 있는 것은, 토지소유권에 대한 보장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생활과의 조화와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안에서 보장을 받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헌재 1993. 7. 29. 92헌바20, 판례집 5-2, 36, 45 참조). 위의 헌법조항들은 한마디로, 토지소유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와 환경보전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할 사회적인 의무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으므로, 토지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입법자의 형성권 역시 보다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둔 취지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토지소유권은 권리와 의무의 복잡한 복합체이므로 그 내용과 한계를 정함에 있어서는 위의 헌법조항들이 바탕으로 된 당시의 사회적 필요ㆍ사회적 통념이 중요한 입법지침이 된다. 입법자에 의하여 구체화되는 소유권의 내용은 그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가 있는 이외에 도시계획법의 규정처럼 도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도시계획구역안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행사를 제한하는 사회적ㆍ경제적 목적 등의 실현을 위한 정책적인 규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규제입법은 성질상 토지소유권자의 재산권 행사 이른바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제한에 해당되고, 그 제한정도의 결정은 규제목적 이외에 규제대상 토지의 위치와 형상용도상의 차이, 관계인의 이해득실은 물론, 국가와 국민의 환경보전 노력 및 국가의 주택개발정책을 통한 쾌적한 주거생활에의 배려(헌법 제35),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한 제한의무의 부과(헌법 제122)등 서로 관련되는 여러 요소를 참작하게 되므로 광범한 재량에 의한 정책입법에 해당된다(헌재 1990. 9. 3. 89헌가95, 판례집 2, 245, 262 참조). 그런데 이러한 정책문제에 관한 한 입법자보다 헌법재판소가 더 사려가 깊고 통찰력에서 앞선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ㆍ경제적 목적 등을 실현하기 위한 규제입법은 그 재량을 현저하게 일탈한 것이 아닌 한 존중되어야 할 영역에 속한다.(중략)

오늘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 중의 하나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ㆍ행복추구권의 실현에 기초가 되는 우리들의 환경권(제35조)조항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 모습을 감춘 날이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로 시작되는 환경권을 명시한 글귀는 사유재산권의 보장조항에 밀려 한지(韓紙)에 붓으로 정성껏 쓴 대한민국헌법 원전에만 초라하게 남은 한낱 골동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수의견이 뚜렷한 이유설명도 없이 위의 헌법조항들(제35조, 제122조)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서 못본 체하고 또 앞서 본 개발제한구역안의 나대지와 사정변경으로 인한 토지에 대한 이용 방법을 규정한 법시행령과 법시행규칙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문 채 헌법위반이라는 결론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중략)

헌법상 환경보전론이 개발우선론보다 항시 우위에 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개발우선론과 환경보존론 중 어느쪽이 우위를 점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우선과 환경보호라는 서로 상반되는 양자간의 이해ㆍ갈등에 대한 조화는 헌법이 아닌 입법형성의 영역에 맡겨 놓고 있는 것이다.

환경오염과 환경보전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차대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환경논쟁은 경제성장과 맞물린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로서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는 우리 스스로가 풀지 않으면 안될 과제다.

다만, 환경위험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와 합리성이 없는 개발우선정책은 결국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오염으로 이어져 생태균형의 지속성이 부정되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부르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앞으로 정책당국이 손질하게 될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축소ㆍ해제 결정에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푸른 숲이 우거진 미래의 삶을 염두에 둔 환경 친화적인 개발이 되도록 바랄 뿐이다.

개발우선론에 편들든 또는 환경보전론에 귀 기울이든,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우리를 잠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시애틀 추장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하나뿐인 지구, 환경오염으로 성난 지구, 오늘의 우리들과 미래의 자손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터전이기에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