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주민들은 무죄다

2015년 9월 25일 | 녹색칼럼

밀양 주민들에 대한 유죄판결
‘옷을 잡아당긴다. 도로에 눕거나 앉는다. 삿대질을 한다. 멱살을 잡고 흔든다. 도로에 주차한다. 레미콘 차량 밑에 들어간다. 콘크리트 운반기구인 호퍼 옆에 서 있다.’
이런 행동은 누구든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행동을 할 경우 최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이 한 행동에 대한 법원의 판단입니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이던 주민 18명에 대하여 지난 15일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의 형사사건 담당 판사는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최대 1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그 집행만을 1년에서 2년간 유예해준 것입니다.
아무런 탈 없이 집행유예 기간을 마치면 상관없겠지만, 그 기간 중 송전탑 반대 활동이든 아니든, 비슷한 활동을 하다 다시 기소될 경우에는 유예되었던 징역형까지 한꺼번에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선고유예’라는 걸 받은 주민도 세 분이 있습니다. 이 분들도 2년간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벌금 200만원을 납부하여야 됩니다. 집행유예든, 선고유예든 모두 유죄판결의 일종입니다. 지금 당장 처벌을 집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래의 처벌을 경고하면서 사실상 손발을 묶는 것이지요.
밀양
<사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제공>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의미
밀양 주민들의 활동은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며 반대운동을 시작하여 10년 넘게 싸워왔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안의 경우 대체로 시민사회단체가 초기부터 결합하여 반대운동을 벌였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주민들이 장기간 반대운동을 벌이자, 뒤늦게 시민사회단체가 ‘저 주민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하는가’하며 뒤늦게 관심을 가지면서 대략 2013년 정도부터 주민들을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 환경단체에 근무하는 변호사인 필자에게도 2011년 밀양 주민이 도와달라며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의 전원개발촉진법 같은 법률이 존재하는 한 송전탑 싸움에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돌려보냈었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3년부터 저도 밀양 주민들을 위한 법률지원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만큼 개발사업에 대한 저지 가능성은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그런데도 밀양 주민들의 진정성에 감동받아, 다른 변호사들과 함께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법률지원단’을 꾸리고 뒤늦게 지원활동에 나서, 행정소송, 공사중지가처분, 헌법소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아직 진행 중인 사건도 있지만, 종료된 사건들은 모두 패소했습니다. 2011년의 예측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었네요. 하여간 모든 행정절차가 끝난 이후에, 주민들이 공사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결국 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70~80대 할머니들이 길바닥에 드러눕고, 공사 차량이 송전탑 부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앞에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을 끌어내는 한전 인부나 경찰들과 의도치 않게 부딪히게 되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주민들이 기소된 사건은 대부분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행동에 대해서 검사는 최대 징역 4년을 구형하고, 법원은 징역과 집행유예로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밀양 주민들을 쉽사리 유죄로 판단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전과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를 모두 종합하면, 우리나라에는 더 이상 핵발전소도 필요 없고, 전기도 부족하지 않고, 따라서 송전탑도 당장 시급하게 건설해야 할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전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아무런 해명도 없이 송전탑 공사를 밀어붙였고, 결국 완공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송전탑 공사의 원래 목적이었던 신고리 3호기는 현재까지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밀양 주민들이 스스로 공부하여 그 부정의함과 부당성을 깨닫고 반대운동을 벌여온 것입니다.
시민불복종과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사람은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부정을 지지하는 것은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다, 부정한 법을 집행하는 정부의 권위를 수락하는 것은 부정을 지지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시민불복종 행위의 기본 명제입니다.
‘시민불복종’의 대명사가 된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침략 전쟁에 반대하며 납세를 거부하다가 1846년 스스로 감옥행을 택하게 됩니다. 소로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정부에 대한 개인의 권리와 의무’라는 글을 쓰게 됩니다.
이 글이 지금과 같은 ‘시민불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년이 지난 1866년이지만, 그때까지도 이 글은 미국 사회에서는 별 다른 반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뀐 1907년 인도의 간디가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영국 정부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소로는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 소로가 다시 세기가 바뀐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습니다.
소로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이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불복종을 조장하는 사회입니다. 노동자도, 장애인도, 언론인도, 교사와 교수들도, 그리고 팔순이 넘은 밀양 주민도 정부와 기업에 불복종하지 않고는 정의롭게 살 수가 없는 사회입니다.
밀양 주민, 그들이 징역형을 받든, 집행유예를 받든, 선고유예를 받든, 정의롭지 못한 정부 아래 있는 한 그들은 무죄입니다.
 
# 이 글은 녹색법률센터 부소장 배영근 변호사가 2015. 9. 24. ‘레디앙’지 에정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