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용 변호사의 녹색서재]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나서

2021년 3월 31일 | 녹색칼럼, 활동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나서

글. 사진. 조윤용 변호사(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이 책은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기 위해 1989년 발표한 환경소설입니다.

사실 세풀베다는 이 소설을 쓰기 훨씬 전에 이미 아마존에서 원주민과 함께 7개월간 생활한 경험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아마존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훼손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아마존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글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아마존의 수호자였던 치코 멘데스가 개발세력인 축산업자들에게 살해당한 후,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였고, 아마존의 정글을 배경으로 서사를 풀어냅니다.

환경소설이라고 하지만 계몽적이지 않고, 한 편의 추리소설과 같은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자연파괴와 그에 대한 자연의 대반격에 마주하게 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숙연함마저 느껴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 ‘연애 소설 읽는 노인’-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제목 그대로 ‘연인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만 결국은 해피엔드로 끝나는 연애소설 읽는 것이 삶의 즐거움인 노인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아마존 개간에 대한 정부의 광고를 보고 주변사람들의 편견을 피해 아내와 함께 엘 이딜리오에 오게 되었지요.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밀림 개간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2년도 되지 않아 사랑하는 아내마저 말라리아로 잃게 됩니다. 그가 밀림을 증오한 만큼이나 밀림을 모르고 있다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불쌍한 외지인을 보다못한 원주민인 수아르 족 인디오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쳤고, 주인공은 수아르 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마존 밀림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수아르 족과 함께 지내며 대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갔고, 밀림에서 자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이 고장에 침투하여 원주민들과 동물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밀림은 점점 황폐화 되어 갑니다. 거대하고 육중한 기계들이 길을 낼 때마다 수아르 족은 한곳에서 3년 동안 머물던 관습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은밀한 지역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밀림은 백인 노다지꾼과 양키들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밀림의 황폐화를 진행시키는 이주민들을 저지하고자 안감힘을 다했지만, 문명의 이기 앞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동물들과 수아르 족 인디오들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 점점 밀림 깊숙한 곳으로 옮겨 갑니다.

 

이제 수아르 족이 아닌 수아르 족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역시 나이가 들어 노년기에 이르렀고, 친구 누시뇨의 죽음을 계기로 수아르 족을 떠나 엘 이딜리오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6개월에 한 번씩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연애소설을 읽는 낙으로 고독한 시간을 소일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마을의 뚱보읍장은 ‘야만인’이라고 늘상 폄훼하는 원주민들 중에서 범인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마을에서 가장 밀림을 잘 아는 노인-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시체를 보고 단번에 사람이 아닌 동물의 짓임을 알아보는데요, 추리소설 기법을 동원한 범인 찾기 – 결국 백인에 의해 잔인하게 새끼를 잃은 어미 살쾡이가 인간에게 복수하려고 인간을 습격한 것임이 밝혀집니다. 이후에도 백인 시체들이 발견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쩔 수 없이 밀림을 가장 잘 아는 노인은 어미 살쾡이를 잡기 위해 밀림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노인과 살쾡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이후에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남겨두고,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을 적어 봅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지닌 짐승의 자태는 굶어서 야위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노인과 살쾡이의 싸움을 보고, ‘밀림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수아르 족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연을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가치관과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작가의 목숨을 앗아간 병이자, 현재 전 세계적인 문제인 코로나19는 박쥐 등 야생동물 탓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터전을 빼앗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공존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으로 아마존 밀림이 파괴되고, 그에 따른 자연의 대반격을 그린 이 책을 덮으며 과연 나의 삶과 가치관은 어떠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