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어버린 기후변화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란 책을 동네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 ‘암울하기만 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라니, 그것도 소설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습니다. 앞부분의 소설 몇 편은 사계절 최적화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거대한 돔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추방당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가까운 미래도시가 배경이고 등장인물이 겹치는 형식으로 각각의 사연을 들려줍니다.
소설 속 상상의 거대 돔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건물 내에서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며 지하주차장을 통해 승용차로 이동해 대형 백화점에 갈 수 있으니 바깥의 기상 상황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도시 생활을 누리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기후가 어떻게 변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기후변화의 양상을 온몸으로 겪으며 사는 사람들 사이의 뚜렷한 경계가 소설 속에서는 가상의 돔시티로 그려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돔시티는 돔 바깥(체감온도 70도)에 사는 사람들의 저항과 인구 증가를 차단하는 수단으로서 돔 바깥에 낙하산을 통해 식량과 콘돔을 정기적으로 배급합니다. 돔시티 바깥 사람들은 그렇게 연명하면서 돔시티 내로 몰래 진입하기 위한 땅굴을 파고, 돔시티 행정부는 불법 땅굴을 발견하면 거기에 사람이 있든 말든 즉시 땅굴을 폭파시킵니다.
구분 짓고, 경계를 만들고, 누군가를 소외시킴으로써 결속력을 다지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간결한 문체의 소설을 통해 바라보며 ‘역시 세상에 희망은 없는걸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질 때, 폭탄을 담은 콘돔 풍선을 돔시티 지붕으로 날려서 돔시티를 파괴시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몇 편의 소설들은 마무리 됩니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맞서 싸우기를 멈춰서는 안 되고,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땅굴 파는 그룹의 리더는 과격파의 폭탄 공격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돔시티 입장에서는 땅굴파가 상대적으로 온건해보일 것이고, 그 덕분에 땅굴파가 돔시티에 우선 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 존재인건가 싶은 한편 그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하는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어지는 단편 소설들은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없는 옥탑방에 살며 4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낙방하고 자신이 원하던 자리에 앉아있는 공무원(5년만에 합격한)에게 무더위 대책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인물, 해상 풍력발전기가 영해 경계를 표시하여 독도를 수호하는 계획이 국민적 호응을 얻는 웃픈 상상, 인도네시아 발리섬 인근 바다의 산호초가 죽어가고 산호초 사이에 숨어서 살던 흰동가리가 사라지자 해변을 찾는 관광객 서퍼들 때문이라고 생각한 어린 소년이 관광객들을 하나 둘씩 살해하는 이야기,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기후변화로 인한 쓰나미 사고라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인물, 빙하가 사라지자 수영을 오래 할 수밖에 없어졌고 그로 인해 어린 새끼를 잃고 망연해하는 어미 북극곰의 시점에서 살기 어려워진 북극 환경을 묘사한 이야기 등으로 소설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과 그 속에 숨어있는 기후변화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동시에 만나게 합니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야 녹색연합 채널에서 보게 된 ‘기후톡톡’ 영상에서 김기창 작가님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기후변화에도 취약한 현실에 대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각각의 삶의 자세, 결심, 두려움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간결한 문체로 담은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읽으며, 인류가 직면한 비극을 각자의 감각과 감성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