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교육생
“답은 현장에 있고 근거는 조문에 있다”
환경사법, 환경공법 교육을 담당해 주셨던 최재홍 변호사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 한 마디가 2주간의 녹색법률센터에서의 시간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장에만 있는 답을 찾아서
변호사가 현장을 찾는다는 것은, 제게는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전국 곳곳을 자동차로 방문하면서 현장 답사와 지방 법원을 다니신다는 변호사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변호사가 다만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재홍 변호사님의 수업 중에 밀양 송전탑 사건에서, 농성하는 주민들에 대해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때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강제집행이 적법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감시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환경 소송은 인과관계는 물론 피해의 존재조차 증명이 어려워 패소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전력을 다해서 소송한다면 그것은 의미있는 패소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다만, 그런 의미있는 패소가 쌓이면 비로소 판결이 바뀌고 법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약간의 희망이었습니다.
이처럼 국가나 기업이 주민과 대립하는 환경 관련 분쟁에서 주민은 패소하는 것이 현실이고, 분쟁 과정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인 이런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있다면 변호사로서 충분히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찾는 것이 주민들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녹색법률센터에서의 실무수습 일정 중 전남 순천, 광양의 현장에 직접 방문하는 체험을 하고 난 뒤에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장 세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순천과 광양에서 실무수습생들은 승용차를 타고 포스코 제철공장과 발전소 근처를 돌아봤습니다. 중간에 정차해서 그곳의 소음을 귀로 듣고, 공장 출입구를 드나드는 압도적인 크기의 덤프트럭을 보고, 오염된 바닷물을 직접 느꼈습니다.
그제서야 ‘아, 이게 소송을 할 만큼 절박하고 심각한 일이구나’, ‘그곳에 오래 거주하던 주민으로서는, 오염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타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직접 가보기 전까지 그렇게 문제가 심각한 줄도, 그저 이주대책을 잘 마련하지 않아서 생긴 분쟁으로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사무실에서의 제 인식과 답사를 가서 느낀 것은 달랐습니다.
- 변호사가 하는 모든 주장의 근거는 조문에서 나온다
변호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반드시 조문에서부터 찾아와야 한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 같지만, 변호사가 해야 하는 일의 전부이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몸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자연을 대리해서 소송을 하려고 하는데, 당사자적격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떤 근거를 제시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법정대리인’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5조와 민법상 법인격 제도를 사용해 자연에 민법상 법인격을 부여하면서 당사자 적격을 인정하라는 법리를 펼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업 중에 변호사님이 당사자적격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셨을 때는, ‘설마 법정대리인 제도까지 끌고 올 수 있을까?’하고 긴가민가했을 만큼 상상도 못한 개념의 연결이었습니다.
그리고 특별법과 행정절차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도 절감했습니다. 골프장 건설을 둘러싼 분쟁 하나만 해도, 도시관리계획법이라는 특별법과, 전략환경영향평가, 토지적성평가 제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환경 문제인데 재산권에 주목해야 하는 경우도 존재했습니다. 또, 일년간 법 공부를 했지만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특별법도 많았습니다. 공장 매연의 경우 ‘수도권대기환경특별법’, ‘백두대간특별법’이 적용되고,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심지어는 관습법까지도 환경 분쟁의 근거 법률로 끌어와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하더라도 실무에 나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공부를 추가로 더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법 뿐만 아니라 제도와 행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 같이 해야만 하는 일, 환경소송
변호사님의 수업에서 오색케이블카 소송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오색케이블카 사건의 변론에서 “숲의 틈”이론을 활용했고 이를 위해 서울대학교 이도훈 교수를 모셔 세미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에게 케이블카가 세워질 경우 자연환경이 입을 피해에 대한 발제를 요청하고, 변호사들은 전문가들의 설명이 구성요건적 적합성을 가지도록 피드백하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변호사가 가져야 할 협업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의를 듣기 전 저는 변호사가 변호사 외에 다른 직역의 사람과 협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실무에서는 변호사와 과학기술전문가, 교수, 운동가, 국회의원 의원실 등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변호사님이 수업중에 실무수습생과 인턴활동가들이 직접 오색케이블카가 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변론한다면 어떤 근거를 들지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주셨습니다. 그때, 동물권과 야생동물의 생태에 관심이 많던 한 인턴활동가 분이 먹이활동, 서식지 간 이동이라는 동물의 생태적 특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대기과학을 전공하신 분은 소음이나 진동 등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의 전문성은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측면의 근거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이 활동을 통해서 환경소송에서 변호사와 전문가 사이의 네트워크를 잘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소송 뿐만 아니라, 화학물질로 인한 인체 피해, 무인 운전,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미래에, 변호사는 그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야 할 필요성이 더더욱 높아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실무수습을 마무리 하면서…
이번 실무수습을 통해 제가 지금까지 배웠던 법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배워야 할 법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 해 동안 로스쿨에서 공부하면서 제 공부는 시험을 위한 공부로서만 머물렀고, 법이 실제로 사회에서 힘을 가지고 사용되는 모습에 대해서는 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실무수습에서 그저 두문자로 암기하고 있었던 750조의 요건, 민사소송법상 입증책임전환 이론 등이 공장 폐수로 인한 양식장 피해 소송, 가습기 살균제 소송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제가 하고 있는 공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의미 있었던 것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주동안 함께 공부하고 멀리까지 답사도 다녀오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동료는 다른 해석을 해냈고 그것을 공유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녹색법률센터에서 받은 좋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정혜민 교육생
저는 원래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로스쿨에서는 공익인권법학회에서 학회장을 맡고 있었고, 시민사회에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저의 관심사는 보통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특징지어졌고,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자였습니다(실무수습을 마친 지금도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환경 문제와 환경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했고, 이론적 기반이 없으니 실천은 더욱 멀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녹색법률센터에서 실무수습을 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실무수습 지원서에 미처 적지 못한 지원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2년 11월이 너무 추웠습니다. “얼죽코(얼어죽어도 코트)”를 외치던 저는 살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롱패딩을 입었고, 파들파들 떨면서 집에 들어가던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지구가 맛이 간 게 틀림없다. 이것이 기후위기인가? 인류는 이제 큰일 났구나. 환경법을 배워야겠다. 이번 실무수습은 녹색법률센터에서 하자. 그렇게 지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환경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채로 녹색법률센터 실무수습에 참여할 때 좋은 점은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선, 실무수습 기간을 함께 해주신 분들께서 저에게는 큰 배움의 원천이 되어주셨습니다. 저와는 달리, 다른 실무수습생 및 인턴활동가님들 중에는 이미 환경법 분야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지니신 분도 계셨고, 대기과학을 전공하신 분도 계셨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분도 계셨습니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 분야 단체들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신 간사님께서도 실무수습 기간동안 라이프스타일부터 환경운동, 시민단체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공유해주셨습니다.
녹색법률센터의 풍성한 교육 프로그램 또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경사법 및 환경공법, 기후위기 대응 법제, 환경영향평가에 이르기까지 환경법 전반에 대해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배움이 얕은 못난 학생인지라 변호사님들의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할 때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덕에 얻는 배움은 부끄러움의 깊이만큼 깊은 곳에 새겨져 저에게 중요한 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식뿐만 아니라 태도의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환경 소송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시고 관련 분야 전문가와 협업하며 현장에서 답을 찾는 환경 전문 변호사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신 최재홍 변호사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밀양 송전탑 투쟁 당시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때 투쟁하던 분들과 함께 ‘고향의 봄’을 부르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변호사님의 진정성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의와 공익을 위해 투쟁한다면 중립적일 수는 없으며, 언제나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라고 주문하신 이영기 변호사님의 말씀도 제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공익인권법학회에서 신입회원을 받으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환경/동물권 소모임 지원자 수가 다른 어떤 소모임보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법학도들 사이에서도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과 환경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번 겨울에 녹색법률센터에서 실무수습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이제 막 환경법 분야에 고개를 들이미는 원우가 있다면, 뭘 알려주기는 어려울지언정 막연한 길 안내 정도는 해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