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원자력이라는 괴물과 결별해야 할 때…

2011년 3월 31일 | 녹색칼럼

이제는 원자력이라는 괴물과 결별해야 할 때…

박서진 (운영위원, 변호사)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사건은 흔한 자연재해였다. 이웃에서 일어난 일이라 남일 같지 않고, 피해자들의 아픔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보도되는 21세기이다 보니 더욱 끔찍한 재난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구가 생겨난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지각의 움직임이 가끔 만들어내는 충돌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작은 존재라는 것, 우리 모두는 불안정한 멘틀 층 위에서 부유하는 지각을 굳건한 삶의 기반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 유약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건은 다른 의미에서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태평양판과 북미판의 충돌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의 방식을 뒤흔들며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삶의 패턴이 낳은 원자력이라는 괴물, 기후 변화 시대에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기까지 했던 그 괴물은 이제 그 지층 밑에 숨겨 왔던 위험한 실체를 지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 괴물과의 동거를 계속할 것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괴물을 불러들인 삶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원자력이라는 괴물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위험성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채 녹색의 덧칠이 입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자, 원자력은 은근슬쩍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대안에너지’ 대접마저 받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원자력을 저탄소 녹색 성장의 가장 큰 견인차로 보고 원전 수출 정책을 추진해 왔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문화재단은 매년 적게는 100억 원 에서 많게는 200억 원을 원자력 관련 언론 광고비로 지출하는데 이를 통해 원자력은 값싸고 청정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덧칠이 입혀지고 있다.

 

원자력 이데올로기는 때로는 환경주의자들마저 헷갈리게 할 정도로 그럴싸해 보인다. 환경주의자이자 지구 사진 작가로 유명한 얀(Yann, Artus Bertrand)은 자신의 다큐멘터리 ‘Home’에서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체르노빌을 보면서 나는 원자력 반대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가 가져온 재앙을 보며, 나는 이제는 잘 모르겠다’. 뭇 생명들과 인간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의 현장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목격한 한 환경주의자가, 기후 변화를 낳은 대량 에너지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찾지 못했을 때, ‘원자력이 탄소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고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얀의 독백에는 환경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아픔과 깊은 고민이 담겨 있어서 눈물겹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대재앙은 원자력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원자력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번 일본의 대재앙에서 알 수 있듯 원자력 발전소는 일단 사고가 발생했다 하면 광범하고 지속적이며 치명적인 오염을 야기한다. 원자력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은 특수 용기에 담거나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수십, 수 백 년 동안 관리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오염원 자체이다. 내구 연한이 다 된 원자로 역시 계속하여 방사능을 뿜어내는 오염원으로서, 완전히 냉각되어 방사능 수치가 0이 될 때까지 냉각시스템을 가동하면서 계속 관리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와 같은 폐기물의 관리는 전기를 이용한 시스템을 가동하여 이루어지고, 그 전기를 만드는데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에 의해 원자로가 파괴되어 일어난 일이 아니고, 폐원자로의 냉각 시스템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즉, 원자력 발전은 현재의 관점에서 값싸고 깨끗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구에 오래도록 큰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는 방사능 오염원이 될 수 밖 에 없으며, 관리 시스템에 작은 균열이라도 발생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우리는 원자력에 입혀졌었던 안전성 신화와 녹색의 덧칠이 벗겨지는 것을 보았다. 답은 하나다. 원자력은 대안이 아니다. 이제는 원자력과 결별하여야 한다. 우선 설계 내구 연한이 경과되었음에도 수명을 연장하여 사용하고 있는 고리원전 1호기를 비롯하여 설계 수명이 다된 원자로를 폐쇄하여야 한다. 최근 부산지방변호사회가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전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와 같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각성해 가고 있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또한 2030년까지 원자로 19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둥 원자력 의존도를 59%로 올리겠다는 둥 하는 원자력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의 기조를 즉시 수정하여야 한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원자력과 결별한다면 이미 원자력 의존도가 30% 이상인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시대에 화석 에너지도 사용하지 못하고 원자력과도 결별한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현재의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원자력만큼 대량의 에너지를 값싸게 공급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안전하고 값싸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낙관주의는 ‘주의’라기보다는 환상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삶의 패턴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여야 한다. 그저 안 쓰는 플러그 몇 개 뽑고 전등 끄는 수준의 에너지 절약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대해 구체적이고 근본적으로 고민하여야 한다. 양문형냉장고, 엘시디티브이, 자가용승용차,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비데, 핸드폰, 냉장고 등등 수시로 더 좋은 것으로 바꿔 주어야만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는 위안을 주는 가전제품들, 철따라 샀다가 옷장에 쌓아두는 옷들, 버리는 음식들, 육류의 소비, 여가 활동, 생활 습관, 더 넓고 쾌적한 주거 공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에너지로 환원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삶의 조건들이 곧 에너지의 문제이다. 우리가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하고 파괴하면서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을 소비하는 방식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환경적 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물질적 만족의 극대화를 계속 추구한다면, 우리는 원자력이라는 괴물을 우리 곁에 불러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절대적이고 필요불가결한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가. 우리는 괴물과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후쿠시마 원전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