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개발특례법의 반사회성
– 전력시설로 인한 지역분쟁을 중심으로 –
녹색연합 대안사회부 석광훈차장
폭증하고 있는 고압송전선 분쟁
고압 송전변전시설로 인한 분쟁은 오래전부터 벌어졌지만 90년대 중반까지는 별다른 사회적 관심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고압 송변전시설로 인한 전·자기장 문제가 제기되고, 이들 시설의 규모가 대규화되면서 이로인한 주민민원 등 지역분쟁이 전국적으로 폭증하는 추세에 있다. 실제로 99년도 국정감사과정에서 한전이 김명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5년부터 99년 6월까지 공식집계된 송전선로관련 민원만 1,120건에 이르고 있다. 예를들어 지난 96년부터 98년간 일어난 분쟁지역만 따져도 수도권지역의 경우 성남시 분당, 양주군 북한산 국립공원, 과천 문원동, 가평군, 인천시 계양구 등에 이르며, 전국적으로는 강원도 동해·춘천, 전남 광양, 충북 예산·영동, 마산시 가포, 경남 산천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게다가 한전은 지난해 [제4차 장기전력수급계획]의 발표에서 발전설비를 2015년까지 현재보다 두 배규모인 8천만kw대까지 건설하고, 그중 핵발전소는 15기를 더 건설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게다가 기존 15만4천볼트(154kv), 34만5천볼트(345kv)의 송전망의 증설과 76만5천볼트(765kv) 초고압 송전망의 신설을 통해 2015년까지 전국에 고압송전선로를 현재보다 1.9배 더 증설하고, 변전소는 2.4배 더 증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만 해도 송변전시설로 인해 심각한 지역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설비를 두 배로 늘린다면 그로 인한 지역분쟁과 생태계 훼손의 문제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대규모 전력시설에 대한 사회적 반발의 원인
고압송전선은 무엇보다도 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로 인해 인근 주민들과 생태계 피해를 문제삼을 수 있다. 스웨덴과 미국, 영국 등에서는 지난 70년대부터 전·자기파로 인한 인체피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고압 송변전시설은 백혈병과 소아암의 유력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전력업체나 전자제품업체 등 이익집단들은 이로 인한 비난여론을 막기위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일부 연구자들에게 반대결과를 내도록 연구용역을 준다던가 언론사를 상대로 로비공세를 벌인다.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압 송전망으로 인한 전·자기파 인체규제치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국가와 지역별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여론은 고압 송전망이 인체에 유해하다는데에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고, 인체피해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시설들을 최대한 주거지역에서 멀게 또는 설치자체를 포기하는 이른바 “현명한 회피”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둘째로 산림파괴와 경관훼손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산의 능선부위에 송전탑이나 변전소를 설치하게 되는데, 이때 해당부지뿐만 아니라 공사차량의 진입도로를 만들면서 해당부지의 수백배에 달하는 산림을 파괴하게 된다. 실제로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태백을 잇는 150km에 달하는 765kv의 송전선로 구간에는 310여기의 송전탑이 세워지는데, 이는 사실상 300여개의 중소규모 산림들이 복구 불가능한 수준까지 훼손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경관훼손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풍수지리”로 대표되는, 우리사회의 자연경관에 대한 가치관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각별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어촌지역은 대부분 지역고유의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공동체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 대형 송변전시설이 들어설 경우 공동체문화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 96년 전남 광양에서는 345kv 송전탑의 마을횡단을 비관하여 2명의 농민이 잇달아 음독자살한 사례까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제도권은 이 거대하고 흉물스런 송변전시설로 인한 경관훼손문제를 정책에 전혀 반영시키지 않고 있으며, 지역주민들만 부동산가격하락 등 또다른 피해를 감수하는 실정이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는 전원개발특례법
이처럼 환경파괴와 지역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전원개발특례법]이라는 무소불위의 법률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법의 핵심요지는 발전-송·변전 시설을 위해 부지조성과 시설설치를 하는데에 있어서 전기사업자가 산업자원부 장관의 승인만 있다면 환경법, 산림법 등 19개의 관련법률들이 규정하고 있는 허가절차를 밟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해당 지자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주민의 권익을 보다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실현하고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핵발전소와 고압송전선 등의 거대기술체제와 이를 보조해주는 전원개발특례법은 이러한 지방자치제도의 목표와 의의를 정반대로 거스르고, 지역주민의 의지와 무관하게 중앙정부와 국영기업의 “명령”에 의해 전력행정이 추진되도록 만들고 있다.
지금처럼 핵발전소 위주의 장거리송전방식을 택하게 되면 지역간 형평성 문제도 발생하는데, 서울·부산·대구 지역은 자체발전량보다 전기소비량이 4∼10배 이상 높고, 핵발전소들이 위치한 전남과 경남, 경북지역의 경우 자체발전량이 소비량보다 2배가 넘는다. 이처럼 소비지역과 발전지역을 연계하기 위해 300km 가까이 송전하게 되면 그 부대시설을 위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와같은 발전 및 송전시설로 인한 환경비용이나 분쟁비용을 수혜자가 부담하지 않고 에너지가격도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이들 대도시 소비지역에서의 전력과소비경향은 억제되지 않는다. 에너지효율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개별난방이 중앙난방보다 효율적인 것처럼 중앙집중적인 발전-송전방식은 지역의 민의(民意)와 고유의 자연환경 및 산업여건에 맞는 지역별 에너지정책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국내 주요 지자체별 발전량 및 소비량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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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김명규의원실(1998.12)
문제의 근원은 핵발전위주의 전력정책에서 기인
산업자원부와 한전은 [제4차장기전력급계획]에 따라 현재 15기가 가동되고 있는 핵발전소를 2015년까지 15기 더 건설할 것이며, 고압 송변전시설 역시 두 배이상 늘릴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특히 한전은 765kv 고압 송/변전시설 공사를 400만kw급 이상의 발전단지인 울진핵발전소 1∼4호기(신태백 변전소연계)와 영광핵발전소 1∼4호기(신남원 변전소연계), 서산화력, 보령화력, 태안화력 등이 밀집한 신서산 변전소 등 총 3개 지역을 위주로 진행할 계획이다. 결국 이처럼 송전망의 규모가 154kv -> 345kv -> 765kv로 초대형화되는 추세는 1기당 100만kw에 달하는 핵발전소를 대규모로 건설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중 첫 번째로 공사되고 있는 구간이 가평-태백구간으로 이 지역에서의 자연환경파괴, 주민분쟁 등의 문제가 다른 2개 구간에서 그대로 재연될 것이므로 전국적인 규모의 환경파괴가 예상되고 있다.
전력수요는 지난 ’97년말 이후 현격하게 둔화되었고, 장기전력수급계획 공청회에 참가했던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이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검토한바 있다. 또한 올 상반기 전국 발전소의 평균가동률은 60%에 머물렀는데, 발전소별로 가동률을 볼 때 수력 22.3%, 화력 26.2%, LNG열병합은 29.6%에 그쳤다. 이는 곧 핵발전이나 유연탄발전소같이 도시지역에서 멀어져야 하는 대용량의 위험시설을 건설할 필요없이 기존시설의 가동율과 효율을 높이는 방안으로도 전력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력정책의 전환과 전원개발특례법의 폐지가 요구된다
역대정부는 전기를 정부가 책임지고 싼 요금에 공급해야 하는 공공재로 인식하여 추진해왔고, 실제로 전기요금제도는 매년 물가억제정책에 종속되어 민심수습용으로 전락해있었다. 때문에 정부는 싼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시설의 입지문제로 발생하는 환경부담과 사회적 희생을 무시해왔으며, 산업은행을 통해 전기사업자인 한전에게 막대한 자금지원을 하는 등 전력시장을 기형적인 구조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민주화와 환경의식이 한층 성숙되어 과거와 같은 관행은 커다란 반발을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정부는 전기문제를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경제재로 인식해야 할것이다.
국가나 국민 모두 핵발전소의 안전문제나 전자파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70년대와 달리, 90년대말에 이른 지금 여론은 핵발전소의 안전문제와 전자파 위험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관행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반발을 받고 있고 그만큼의 사회비용을 치루어야 한다. 한전에 대한 이러한 특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시장개방과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도 모순되는 점으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