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기오염소송 소장제출을 앞두고 신문사 기자들로부터 몇 차례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회견을 준비 중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소송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미리 기사가 나가버려 기자회견 당일 날 분위기가 썰렁해질 것이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몰차게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기자회견이후에 기사화 해줄 것을 당부하고 소송의 취지와 의미 진행사항을 설명하였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주었다. 모 경제신문 기자만 빼고. 그는 기업들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계무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시민단체가 국내에서 재탕 삼탕으로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논조로 기사를 냈다. 대기오염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있는 서울대기오염소송으로 ‘재탕 삼탕’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평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런 생각은 서울대기오염소송이 각종 포털 싸이트에 소개된 후 누리꾼들의 댓글들로 확연히 드러났다. 도시계획에는 스카이라인(Skyline)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을 스케치할 때 하늘과 맞닿아 있는 건축물들에 따라 그 사회 구조와 권력의 특징을 파악해 볼 수 있다. 고딕양식의 웅장한 성당들이 중세의 스카이라인을 결정했고, 근대 민족국가 태동기에는 절대군주가 살고 있던 성이 그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지금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마천루들의 주인은 바야흐로 기업이다. 스카이라인의 지배자들은 역사적으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며 전체 사회구조를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게 재편시켜왔고 사회라는 구조속의 행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권력이 기능하고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자신의 의식과 욕망을 길들여왔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모든 사건에서 어렵지 않게 이런 생각의 편린들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대기오염소송의 피고들은 서울시, 국가, 자동차 회사이고 원고는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천식, 폐기종, 만성기관지염, 만성폐색성폐질환등의 호흡기환자들이다. 소장의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피고들이 만든 자동차와 도로로부터 치명적인 오염물질이 배출되었고 이것이 원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량으로 집적되어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도로설치 및 관리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서울시와 국가 그리고 오염의 원인물질을 제공한 자동차 회사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와 서울시는 서울 시내를 종횡으로 연결하고 주요 간선도로망을 그물망처럼 형성함으로써 대량의 자동차들이 심각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게 하였고 자동차회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조판매한 자동차들이 서울시내의 도로를 통행하면서 대기오염을 발생시킬 것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배출방지 조치 없이 대량의 자동차를 제조판매 함으로써 원고들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이번소송은 2002년 12월부터 기획되었다. 그해 8월에 서울에서 있은 한ㆍ일 환경변호사 심포지움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 자리는 한국과 일본의 환경변호사와 활동가들이 모여 양국의 환경소송사례들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환경소송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일본과 열정과 역동성이 있는 한국의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2년에 한번꼴로 한자리에 모인다. 그때 주요하게 논의되었던 것이 도쿄대기오염소송이었다. 1996년에 99명의 호흡기질환자들에 의해 제기된 이 소송이 당시까지 법정에서는 지루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음에도 사회적으로 이미 중요한 성과들을 이끌어내었다. 소송을 통해 여러 중요한 자료들이 공개되었고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절감한 이시하라 도쿄도지사가 ‘No Diesel Car’를 선언하며 디젤자동차의 도쿄도내 진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건설 예정되어 있던 도로건설계획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게 한 것이다. 어느덧 백발이 무성해진 일본 환경변호사들은 이런 사례들을 전하며 한국의 변호사들에게서 자신의 젊은 날 모습을 본다고 했다. 개인화, 파편화되어 공익이라는 것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일본에서 자신들의 계보를 이을 후배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도 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얼마 있지 않아 한국으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심포지움에서 논의되기도 했던 도쿄대기오염 소송이 승소했다는 것이다. 도쿄지방법원은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천식과 같은 호흡기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 정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자동차회사에 대한 청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각하였다. “자동차 배기가스와 천식과의 인과관계, 자동차 회사가 피해발생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책임이 있었다는 점들은 인정하지만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 어떤 저감기술이 사용가능하였는지 원고들이 충분히 입증하지 않았다.” 준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원고의 모집이었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진보정당을 만나기도 하였고, 환경현안으로 투쟁하고 있는 대책위원회를 찾아다녔고, 소송을 소개하는 전단지를 들고 도로가 옆 노점상분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길 위에서 만난 분 들 중심하게 기침을 하거나 본인을 천식환자라고 소개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보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 것은 “내가 못나서 여기서 장사하는데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냐”는 이야기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때문에 병원에 갈 돈도 시간도 없으시다며. 우여곡절끝에 원고로 참여한 23명의 원고들은 평범한 분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원고인단으로 언론에 노출되면 직장생활이나 생업, 혹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분들은 한분 한분이 서울시민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활동가, 변호사, 전문가들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기자회견장에서 이분들은 준비된 활동가들이었다. 서울대기오염소송은 이 사회에 대기오염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데 그 시작이 있다. 공론의 장을 통해 대기오염의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서울시민 전체의 문제로서, 환자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치료부담을 공공의 문제로 부각시키는데 그 의미가 있다. 10년전 제기된 도쿄대기오염소송은 도쿄 고등법원에 계류중이다. 2006년 9월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18세 이상의 도쿄도내 모든 천식환자들에 대한 치료비 재원을 국가, 도쿄도, 자동차회사들이 부담하자는 화해안을 제출했다. 2007년 1월 자동차회사들도 의료비 조성을 포함하여 구제안에 협력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대기오염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현재로선 알 수없다. 법정 밖에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가느냐가 소송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녹색교통에 기고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