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분쟁지역 답사를 다녀와서
사법연수원 36기 이 재 은
1. 답사의 진행과정
(1) 천성산 분쟁지역
법률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녹색연합. 원래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녹색연합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녹색연합에서는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어 나는 그것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의 일정은 지율스님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몇 달 전 매스컴에서 접한 지율스님의 단식투쟁. 단식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으레 등장하는 투쟁의 수단 중 하나로 여기며 쉬이 보아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지율스님을 통해 직접 그 투쟁과정의 전말을 생생히 듣고 보니 정부와 언론과 각종의 사회의 기득권층과 싸워온 그 투쟁이 얼마나 진실하게 천성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 싸움의 과정이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천성산에 도착하여서는 서재철 국장님의 인솔을 받아 수려한 계곡을 따라 내원사를 방문하였다. 천성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계곡이 발달한 곳이어서 조금만 들어가도 깊은 산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천성산에 서식하는 각종 생물들은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평화롭게 생활하고 있었을 터인데 KTX라는 성장제일주의의 상징물로 인해 졸지에 평화로운 삶을 위협받게 된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율스님과 서재철 국장님은 환경보전 운동의 선봉에 있는 분들로 참 배울 것이 많은 분들이었다. 지율스님은 천성산의 생태계와 자연환경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분쟁과정에서 남발되었던 정부측의 무성의와 절차무시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치신 분이었다.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참 힘든 일인 줄을 안다. 특히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앞에서, 온갖 협박과 회유 앞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고통과 생명의 위협을 수반하는 삼천배와 100일 단식까지 감행하면서 투쟁하는 것은 보통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율스님이 보통사람과 다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지행합일의 힘은 결국 어떠한 사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앎에 대하여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지율스님이 강한 의지에 기반한 운동가라면, 한편 서재철 국장님은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부분과 어려움이 있는 부분을 균형있게 객관적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야말로 전문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2) 부산 명지대교 건설 분쟁지역
부산 명지대교 건설문제는 그야말로 법이 경제논리와 권력에 대한 단순한 수권규범으로 전락한 사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유명한 철새도래지인 을숙도는 문화재관리법 등 5개의 법으로 보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한 사정’을 인정하여 개발허가가 났다고 하니 도대체 환경보전에 관한 법률들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다. 특히 명지대교 건설이 진정 불가피한 것인지에 관해서도 명확한 대답이 없는 것 같아서 의아했다. 다른 도로를 확장하거나 우회도로를 만드는 방법으로 대안을 수립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철새도래지인 을숙도에 6차선 대교를 놓는 사업을 강행하려 하는 데는 이미 부산의 주요 건설사업을 장악한 일본 자본 롯데의 로비와 이에 결탁한 행정청의 근시안적 행정에 원인이 있었다. 현대의 도시 생활은 행정에 의해서 상당부분 형성되어 가는 데 우리나라 행정은 아직까지 환경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환경은 개발에 비해 가치판단의 우선순위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3) 자연환경 보전의 움직임 – 울진 왕피천 일대
차가 그다지 막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산에서 울진으로 이동하는 데 무려 6시간이 걸렸다. 울진은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최하 5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교통이 좋지 않은 까닭이다. 이렇게 교통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울진의 아름다운 자연이 비교적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라 하니 참 아이러니컬 하다. 울진의 산세와 왕피천 일대는 참 아름다웠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것만이 자연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내가 본 어떤 훌륭한 자연모습보다도 깨끗하고 풍성했다. 이런 자연을 보면서 살아온 사람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개발이익과 이 자연을 바꾼다거나 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용납하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울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보다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진보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었다. 최근에 왕피천 일대 성류온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울진군수가 온천개발허가를 내어주지 않은 것은, 비록 소송에서 패소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개발의 기치하에 경제논리에 중심을 잃고 휘둘리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에 비하여 매우 성숙한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울진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원자력발전소가 있어서 교부금 등 재정의 혜택이 있는 관계로 오히려 개발추진 지역에서 제외되는 등 주민들의 경제생활 개선욕구가 충족되고 있지 않은 측면이 있다. 환경보전 운동이 실효를 거두어 왕피천이 언제까지나 하천 전 구역 1급수를 유지하길 바라지만, 주민들의 개발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만 그러한 정책이 장기적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생태관광사업 등이 그 조화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4) 백두대간의 훼손 현장 – 자병산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백두대간 개념에 놀라워하면서 자병산을 등반하였다. 언덕에 오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백두부터 한라까지 굳건히 하나의 생명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 백두대간이 자병산 일대 석회암 채굴로 인하여 그 맥이 끊겨져 있었다. 석회 광산으로 인해 산은 무자비하게 잘려나가고 허옇고 뻘건 산의 단면만이 우리를 대하고 있었다. 광업권을 취득한 사업자는 사업이 끝난 후 복구책임이 있다고 하나, 폐석을 쏟아 넣고 흙을 덮고 풀을 심는 정도의 복구 작업으로서 이미 훼손된 백두대간이 재생될리 만무하고, 게다가 복구에 요구되는 자금의 규모는 엄청나고, 지금 사업자인 외국계자본은 우리나라 다른 자본에 이 광업권을 넘기려 하고 있다고 하는 데 우리 다른 자본은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아 복구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환경운동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하에 돈은 곧 힘이고, 개발은 곧 발전을 의미했던 지난 날의 가치체계가 전혀 무의미하거나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연을 돈과 무관
하다는 이유로 파헤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경제패러다임과 환경가치의 충돌
환경분쟁지역을 돌아보면서,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경제패러다임과 환경가치의 충돌이 있었다. 과거에는 환경문제라 하면 환경오염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하는 가에 맞춰져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개발세력과 그에 맞서는 환경적 가치 사이에 어떠한 타협점을 찾느냐가 관건인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실 현실은 환경운동 세력에 불리한 점이 많다. 힘으로 보자면 경제패러다임이 훨씬 강하다. 부산에서 만난 부산녹색연합 위원장 님은 자신의 싸움이 여러 가지로 힘든 점이 많다고 토로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한 그것이 문제를 둘러싼 현 상황 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환경운동은 성장우선주의, 개발의 효율성을 내세운 정부정책이 잊고 있는 중요한 부분을 주의환기시키는 것 자체로 큰 의미를 갖는다. 소수의 반대파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전체 사회가 건강해 지고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일단 환경운동가들은 자신의 일이 그러한 가치를 갖는 다는 것을 인식하고 만족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승패에 연연한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널리 환경적 가치를 알리고 사회가 가치판단을 함에 있어 균형감을 잃을 때 이를 보완하며, 장기적인 차원에서 국민이 환경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3. 환경소송의 전망
환경분쟁의 해결방법으로 환경소송은 얼마만큼 실효성을 갖는지도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환경분쟁도 마찬가지여서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등의 운동을 펼친 후에 실효성이 없으면 그때서야 소송의 방법으로 간다고 한다. 천성산 문제나 명지대교 문제, 왕피천 문제는 이미 법원의 판단을 받거나 계류중인 상황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환경 쪽에 쉽게 손을 들어줄 법도 한 상황인데 소송으로 이길 수 있다고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법원에서의 실체적 진실발견은 결국 증거, 다시 말해 환경영향평가서나 전문가 등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증거자료는 사실상 돈과 권력자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소송의 승소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간척사업 공사중지가처분 인용결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 우리 법원은 개발과 환경사이의 가치우열관계를 확립한 상태는 아니라고 보여지며, 이렇게 가치관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환경적 가치의 중요성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면 환경소송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환경소송을 통한 해결사례가 늘어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법과 제도는 보다 큰 강제력을 가지므로 실효성 있고, 일반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사회에 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4. 글을 마치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환경분쟁지역을 직접 눈으로 보니 문제의 중요성과 개발우선주의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고, 전문가들의 설명을 듣고 같이 간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나름대로 환경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법률가는 사회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알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기회는 참 유익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개발패러다임이라는 큰 흐름과 이에 대한 환경적 가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므로 평행선을 긋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땅덩이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어느 한 가치를 우선시 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생각이 들때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지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토론, 절차적 정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합리적 타협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합리적 타협점을 찾기 위한 최선의 노력,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양쪽이 자신의 이데올로기 뿐만 아니라 타방의 이데올로기를 인식하고 폭넓게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정해진 절차를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수렴하고 토론을 거쳐 생태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개발정책의 아이디어를 얻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