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환경소송 교류와 연대를 생각하며
연대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뿌리의 문제를 함께 푸는 것이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군-
1. 3년만의 재회
인천공항으로 가던 날, 창밖은 비였다. 비는 끝없이 펼쳐지는 도로의 단조로운 풍경들마저도 평화롭게 만들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그리웠고, 커피 한모금의 목 넘김이 좋았으며, 그 향기가 오래도록 머물렀던 날이었다. 그날은 3년 전과는 커피한잔을 마실 여유의 깊이만큼이나 그렇게 달랐다. 2002 한•일 월드컵의 감동과 열기가 아직 거리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던 그때 난 긴장하며 이 길 위를 달리는 버스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3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느긋함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방문단의 반 이상은 이미 교분이 있다는 친숙함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얼마 후 다른 일행들과 함께 오시리라 생각했던 마나기 아끼오 변호사님이 뜻밖에도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 무성한 백발을 바람에 드리우며 파이프 담배를 멋스럽게 피우시는 분. 항상 사람 좋은 얼굴을 하시면서도 연단에 서는 순간 비장한 투사의 모습으로 일변하시는 분. 자신이 한 환경소송에서 단 한차례도 패한 적이 없으셨던 분. 가히 일본 환경소송 분야의 전설이라 할만한 분, 마나기 아끼오 변호사님은 그런 분이었다. 난 그 사이 눈가에 주름이 많이 늘었는데, 그 분의 눈은 오히려 순수한 아이의 그것을 더욱 닮아가고 있었다. 아끼오 변호사님과 (눈빛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오사카, 도쿄 등지에서 출발한 다른 참가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였다. 언어의 장벽마저도 만남의 반가움을 가로막진 못한다. 그래도 성현씨나 혜진씨의 통역이 없었더라면 3년의 공백을 그렇게까지 짧은 시간에 메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원이 모두 도착한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공식 일정의 첫 번째 장소 청계천 홍보관으로 바쁘게 내달렸다. 빡빡한 일정들의 시작이었다. 많은 일본참가자들이 청계천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서도 한국의 청계천과 같은 대규모 하천복원공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청계천홍보관을 다녀온 후 이 사업에 대한 환상만을 가지게 될 것이여서 시민활동가의 시각에서 바라본 청계천에 대한 추가설명을 했다. 공사과정에서의 무식하달 수밖에 없는 단호함, 자연적인 하천의 흐름이 아닌 인공적인 취수 방법과 흐름을 택한 점 등 시민단체들이 사업초기에 결합했다가 빠져 나오게 된 그간의 경위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날도 청계천 일대는 무척이나 교통체증이 심해서, 차안에 있던 우리 모두는 근시안적인 사업이 가지고 올 수밖에 없는 결과를 몸으로 체험했다. 당초 계획보다 1시간 늦게야 환영식장인 토속촌으로 이동했지만, 1시간을 들여서라도 해야 할 소중한 교육이었다. 우리는 단체별로, 그리고 지역 순서대로 일어나서 자신들에 대한 소개와 참가동기 등의 나눔을 가졌다. 참여인원이 100명에 달했던 지라 소개가 한바퀴 돌고나니 어느덧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다 못 나눈 이야기는 내일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무방할 것이었다.
2. 공통점과 차이점-한•일 양국의 소송사례에서
이튿날 아침엔 코리아나 호텔에선 특별한 조찬모임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천성산 문제와 닮아있는 다까오 산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변호사님과 실무자가 역시 천성산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서재철 국장님과 만나기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얘기는 밀도 있게 진행되었고, 얘기의 핵심은 새로 뚫리게 될 터널이 천성산에 생태적 관점과 수리•수문학적인 관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로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조찬모임은 그렇게 서로의 사례를 공유하고 향후 연대의 틀을 굳건히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심포지엄은 이번 한국측 단장이신 박오순 대표님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곤도우쭈우코우 일본측 단장님의 답사, 제종길 의원, 김성수 대한변협 환경과 에너지위원회 위원장, 이석태 민변 회장님들의 축사로 이어졌다. ‘긴 축사는 환영받지 못한다’며 제종길 의원님이 운을 띄우긴 했지만 한•일 환경호사심포지엄의 의의와 중요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해보였다. . ‘일본공해피해자 총행동의 역사’를 다룬 영상물이 첫 번째 순서로 소개되었는데 미나마타병, 다까오산투쟁, 요코다미군기지소음소송, 아리아께해간척사업반대소송등 역사적인 투쟁의 사례들을 매우 압축적이고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이후 ‘미국환경법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이동호 변호사님이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하였는데 정책입안, 조사, 그리고 교육에 대한 정부, 시민단체, 로펌, 학계등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역할들과 환경보호를 위한 기금마련 방안등을 중심으로 발표하였다. 제 2세션의 주제는 도로•하천•댐등의 공공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오다슈우지 일본환경법률가연맹 변호사님의 발제로 시작하였다. 1960년대 이후 지속된 고도성장은 1990년 경기침체기 까지 30여년 동안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정치가, 관료, 종합건설회사가 대규모공공사업의 이권을 둘러싸고 공고한 관계를 가지는 이른바 철의 트라이앵글을 구축시켰다. 하지만 시민들의 지속적인 반대투쟁으로 이 공고한 관계에 자그마한 균열을 만들며 원탁회의라는 ‘시민이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이것은 댐심의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원탁회의나 댐심의위원회가 건설사업을 직접적으로 막지는 못했지만 기존에 시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공사업을 강행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기엔 충분했다. 두 번째 순서는 박태현 변호사님의 발표였다. 일정 규모이상의 사업에서만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한 현행법제도의 틈새를 이용해 전체사업을 부분으로 나누어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거나 누락시키는 관행을 지적하고 최근에 하급심에서 전체사업을 부분으로 나누어 보고하는 행태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한 고무적인 사례를 들었다. 사전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제를 정리하였다.
제 3세션의 주제는 폐기물 정책과 처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첫 번째는 박오순 대표님의 “생활폐기물처리시설의 현행법상의 문제점”에 관한 발표였다. 우선 입지선정위원회 구성방법에 관해 ‘위원의 1/2 내지 2/3 이상을 폐기물처리시설설치주체인 지자체가 선정’하도록 하고 있고 ‘주민대표를 주민이 선출하지 아니하고 의회가 선정’하도록 하기 때문에 주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행 법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제 3세션 두 번째 순서는 일본공해변호인단대표위원으로 있는 마나기 아끼오 변호사님의 발표였다. 그는 우리가
재활용을 말하지만 모든 물건은 재활용이 아니라 재사용 될 수있도록 만들어져야한다는 주장으로 말문을 여셨다. 재활용을 위해 2차 가공을 하고 그 과정에서 다이옥신등의 환경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울러 쓰레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은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제품을 제조하여야 하며, 나아가서 처분장이 없으면 쓰레기는 줄어들것이기 때문에 소각장, 최종처분장의 건설을 철저하게 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현시점에서 정부는 처리장 시설의 구조에 관한 기준과 배출되는 유해물질에 대한 기준을 설정한 것으로 폐기물처리가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미나마따공장의 배수도 다이옥신에 관한 규제도 당시의 시점에서는 안전한 것이었다며 일침을 놓았다. 따라서 규제하고 있는 물질만이 위험하고 기준치 이하이면 안전하다는 인식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며 극소량의 축적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절대위험치의 기준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일갈하였다.
3. 진화된 환경소송과 연대를 위하여
삼일째 일정은 새만금 갯벌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2년 전에 이분들과 새만금 해창갯벌을 방문했을때는 갯벌은 여전히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떼와 칠게와 백합들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존재감들을 가득 수놓고 있었다. 올해의 일정은 33km방조제의 처음과 끝 지점을 둘러보고자 했는데 부안 하제마을과 군산 계화도 갯벌 현장은 이미 퇴적층이 쌓여가고 있었고, 백합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에 개체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었다. 33km를 둘러본 우리는 그렇게 이사업의 허황됨과 황담함을 눈으로 확인했다. 언젠가 이들이 다시 한국을 찾을 그때 이곳 또한 지금의 해창 갯벌처럼 매마른 자갈과 모래바닥을 드러낸 채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아닌지…
저녁엔 일본 아리아께해 소송 변호인단과 한국 새만금 소송 변호인단의 간담회가 있었다. 어민분들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는 공동체에 가슴아파하며 서로 위로했고, 하얗게 죽어있는 조개 무덤 사진을 보며 함께 분노했으며, 당신 한 몸 희생하여 이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러겠노라는 비장한 결의를 밝혔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서로 깊이 공감하며 서로의 싸움에 지지와 격려의 훈훈한 말씀을 나누는 모습은 가슴 뭉클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새삼 확인한 것은 ‘군산 미군기지 소음소송’과 ‘요꼬다 미군기지소송’, ‘새만금 소송과 소생하라 아리아께해 소송’ ‘미나마타병과 온산병’, ‘천성산과 다까오산’ 등 양국의 환경소송사례들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통점 속에 차이가 있다면 많은 부분 현재진행형이지만 일본에게는 긴 투쟁을 통해 쌓아온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이다. 한국의 환경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일본의 소송사례들이 싸움을 준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환경재난 시간차가 30년이 었다면 이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중국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시대가 굴리는 ‘개발과 파괴’라는 수레바퀴의 양날은 훨씬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다까오산 대책위원회 요시호루 활동가님은 한국의 활동가들이 젊은 것을 부러워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청년들이 더 이상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늦은 시간서울로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며 어쩌면 언젠가 중국을 찾은 내가 느끼게 될 심정일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은 그분들이 더 노쇠하시기 전에 한•일 환경변호사 대회가 더욱 활성화되고 동아시아 환경소송교류 연대로 발전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일 것이었다.
-환경소송센터 활동가 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