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화요일 저녁은 웬만하면 시간을 비워두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부터 환경법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이 강의가 매번, 화요일 저녁 7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이 강의는〈환경소송센터〉에서 주최하는 2007환경법률학교 봄 강좌 「환경과 법이 만나다」이다. -지난 6월 12일도 역시 화요일이라 강의장소인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을 찾았다. 지난달 중순부터 들었던 강의가 벌써 다섯 번째 강의를 맞이했다. 총 8회의 교육일정이 이미 절반 이상이 진행되었다. 흘러간 시간만큼 날씨는 더욱 더워지고 있었다.
이날 강의는 「환경보전을 위한 정책수단Ⅰ-환경계획과 환경기준」 이라는 제목으로〈한국법제연구원〉의 함태성 선생님이 진행하였다. 선생님은 헌법 제35조 환경권 조항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뗐다. 그는 환경권에 대해 규정한 헌법 제35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고 나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앞부분인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에만 천착하는 경향이 있고 뒷부분인 ‘환경보전을 위한 의무’ 부분엔 소홀한 면이 있다고 했다. 오히려 뒷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이어서 ‘국가와 국민이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유도하는 여러 가지 환경정책수단들이 소개되었다. 처음에는 강의제목에도 나와 있듯 ‘환경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펼쳐졌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부처 이기주의’에 의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규정은 사문화(死文化)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개발법제의 최고법인 국토기본법의 이념과 목적에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이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제8조에서는 국토종합계획이 다른 어떠한 국토에 관한 계획보다 우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환경계획이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며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개념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토종합계획에 따른 개발들이 환경계획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관련조항을 보완하고자 하면 각 개발부처에서는 사업진행의 불편함 때문에 반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특히 그 반대하는 정도는 직급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개발 부처에서 결정권한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부처의 편의성만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각종 환경기준과 규제수단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특히 나는 각종 환경규제수단들이 흥미로웠는데 법(法)이 실제사회에서 갖는 한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규제수단은 성격에 따라 크게 직접적 규제수단과 간접적 규제수단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인ㆍ허가, 행정감독 및 제재처분, 지시 및 통제와 같은 직접규제를 주로 실시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각종 경제적 유인수단과 자율환경관리제도와 같은 간접규제 방식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직접적 규제수단은 경제성이 적고, 정보의 한계로 인해 소수의 위반자만 처벌할 뿐 나머지 대부분의 위반자는 규제하지 못한 단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수단보다 적용이 신속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배출규제 중 농도규제제도는 오염물질의 최대 농도를 정하여 오염물질의 배출농도를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각 사업장에서 오폐수를 내보낼 때 오염물질 농도가 배출허용기준 이하로 떨어지도록 물을 타거나 비가 올 때만 방출하거나 하면 규제할 수 없다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자 만든 것이 총량규제제도이다. 총량규제는 배출허용기준을 ppm과 같은 단위당 집중량으로 삼지 않고, 시간당 또는 일단위, 연단위로 오염물질 배출량을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은 근래에 기후온난화 해결 방안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배출권 거래제’도 국가 간의 총량규제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총량규제제도 역시 배출저감시스템을 잘 갖출 수 있는 큰 기업에게는 유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군소기업과 신규사업자들에게는 문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환경범죄를 단속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도 소개되었다. ‘환경범죄’라는 용어도 생소했지만 이것을 처벌하는 방식들도 생경했다. 우리나라는 ‘환경범죄’에 대해 개별 환경행정법 중심으로만 처벌이 가능하고. 형법에 의한 규정이나 처벌은 매우 소홀하다. 개별환경법 중심의 이러한 처벌은 대기업 입장에서는 솜방망이에 불과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환경범죄를 형법적 차원에서도 규율하고 있다. 한편 환경분야 전문성을 갖춘 환경단속공무원에게 환경범죄행위에 대한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환경특별사법경찰제도’라는 이색적인 제도도 있었다.
직접적 규제가 환경파괴 행위를 저지하는데 역점이 있다면 간접적 규제는 그 반대이다. 간접적 규제수단의 중점은 경제적 동기부여에 의하여 기업이나 개인이 자발적으로 환경친화적인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 규제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환경악화 행위에는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고, 환경보적 행위에는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경제적 유인(economic incentive)이다.
선생님은 환경과 관련된 부담금 제도에 대해 말하면서 이러한 부담금들은 환경보전을 위한 활동에 잘 지원되어야 하며 이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일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였다. 특히, 물이용 부담금은 주먹구구식으로 걷히고 있으며 상수원 지역 주민들에게 부적절하게 지원된다고 하셨다. 그 예로 노인분들을 위해 수백만원짜리 일본 안마기를 상수원 지역에 놓은 적이 있는데 결국 안마기의 매뉴얼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노인 분들이 이용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하셨을 때는 정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선진국에서는 소득세는 낮추고, 환경세를 올리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엄밀한 의미에서 목적세로서의 환경세가 없다는 점, 최근 정부, 기업,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인 환경보전목표 달성을 위한 자율환경관리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이름 그대로 ‘자율’제도이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셨다.
강의내용을 정리하면서 나는 이러한 정책수단들이 행정기관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내미는 ‘채찍’과 ‘당근’이라는 생각을 했다. 뻔한 말이지만 환경악화 행위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하는 직접적 규제수단은 ‘채찍’이고, 환경보전 행위에 대해 이익을 주는 간접적 규제수단은 ‘당근’이라는 것이다.
나는 ‘채찍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단속과 규제는 결코 ‘나쁜 짓’을 근절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입대하기 직전에 ‘불법복제 음반과 영상물을 단속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명의 단속요원들이 승합차를 함께 타고 다니면서 불법복제음반이나 영상물을 판매하는 업자들의 노점이나 상점을 뒤져서 불법복제물이 나오면 전량 수거하는 일이었다. 단속반은 부산과 경남 일대의 웬만한 번화가들을 모두 샅샅이 뒤지고 심지어는 불법복제물이 만들어지는 비닐하우스까지 찾아내서 단속을 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불법복제물이 큰 길거리에서 팔리는 것이 조금 줄어든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처럼 불법복제 음반과 영상물들이 길거리 곳곳에서 팔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확신을 했다. ;단속과 규제로는 범죄와 같은 나쁜 행위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 막는 사람들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 사각지대에서 많은 사람들의 불법행위가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경파괴 행위에 대한 규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환경 파괴행위를 ‘하지 말라’고 막는 것보다는 환경보전 활동을 잘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그것이 경제적 유인제도와 같은 당근일 것이다. 작년에 환경정의 활동가들과 환경과 관련된 TV다큐멘터리를 보는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한 프로그램은 국내외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 제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선 커피 판매점에 자신의 컵을 직접 가져가서 커피를 담아가면 몇 백원 정도의 금액을 할인하여 주고, 비닐봉투를 쓰지 않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면 50원 정도를 돌려주는 대형할인마트의 예 등이 소개되었다. 방송은 이러한 제도의 시행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일회용품 사용저감 효과와 경제적 이익을 남겼는지도 그래프 등으로 보여주었다. 그 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방송내용 중에서 내가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소비자들의 일회용품 사용으로 발생한 부담금이 쓰이는 경로였다. 그 중 30% 정도가 시민단체 지원금으로 쓰인다고 나와 있었다. 사실 많은 환경단체들이 재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이 후원 행사, 회원 확보, 프로젝트 공모 등을 통해 부족한 재정을 채우려 분주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과 관련된 부담금들로 연간 걷히는 금액들은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 일정한 비율의 금액들이 환경단체의 지원금으로 책정되고, 그것을 정당한 방법을 통해 관련된 활동을 하는 단체들에게 잘 지원된다면 어떨까. 많은 단체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고충을 겪지 않고도 재정적 어려움에서 놓여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환경단체 스스로도 이러한 부담금들이 잘 쓰이는지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것들이 적절한 방향으로 쓰이도록 제안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환경보전을 위한 ‘당근과 채찍’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없는 사회’를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규제나 경제적 유인책 없이도 자율적으로 환경을 지키는 일에 참여하는 원숙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되는 사회,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환경을 지키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그러한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이다.
하지만 환경을 파괴한 행위가 눈에 띄게 드러나자 않거나 당장에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 방심하는 게 요즈음의 세태이다. 그러나 그렇게 환경파괴 행위를 외면하다가 지구가 자생능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면 상황은 역전될 것이다. 그 때는 누군가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모든 지구시민이 알아서 환경보전에 힘쓰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작은 금전적인 이익을 넘어 넓은 안목으로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생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지구 생태계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일’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글 : 환경정의 김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