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소송센터 김 혁
1. 아픈 아이들의 세대
12월 5일은 내 아이의 출산예정일이다. 아이의 태명은 ‘봄’이다. 만삭이 된 아내의 배를 통해 봄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한 생명은 이렇게 나와 연결된다. 철없던 시절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곤 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막연한 걱정이 있다. 특히 이곳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후로는 더욱 그랬다.
지금은 ‘88만원 세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우석훈 박사가 쓴 책 중 ‘아픈 아이들의 세대’라는 책이 있다. 다음과 같은 책 표지 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한번 몸속에 쌓이면 그것으로 끝인 미세먼지 피엠텐(대기오염 지표중 하나로 인체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지옥, 서울은 앞으로 적어도 5년간은 도저히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없는 죽음의 땅이다. 임산부와 아이들은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야 한다.”
이 책이 주는 심각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을 떠나지는 못했다. 다만 지금 북한산 자락이 뒤편에 있는 수유리 화계사 근처로 아내와 신혼살림을 꾸렸다. 밤이면 아내와 화계사로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참 공기가 다르다.
2. 서울의 대기환경 현황
서울시민들은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역시 수치이다. 서울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국가들 중 대기오염 정도가 가장 심하다. OECD가 200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은 미세먼지 피엠텐 기준 71㎍/㎥(가로,세로, 높이 1m 되는 방의 크기에 1㎍의 미세먼지가 있는 것을 1㎍/㎥)로 2위 헝가리 부다페스트 63㎍/㎥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도쿄의 33㎍/㎥의 2배, 뉴욕, 런던, 파리의 20~22㎍/㎥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수치들이 이렇게 나열되면 우선은 뭔가 복잡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수치들이 우리의 생명과 연관될 때 이것은 살아서 꿈틀거린다. 경기개발연구원은 2003년 수도권에서만 대기오염으로 인해 조기 사망하는 인원이 1만 1000명에 달하며 수도권 시민이 동경에서 산다면 수명이 3년은 연장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발표는 2004년 우리나라 천식환자수가 227만명으로 서울시의 경우 20명중 한 명인데 4세미만의 영유아의 경우 더욱 심각해서 4명중 1명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런 천식의 30~40%, 호흡기 질환의 20~30% 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저체중아나 미숙아같은 출산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2006년 국내 발표도 있었다. ‘아픈아이들의 세대’ 필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 더 이상 이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살아야 한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앞으로 3년에서 10년간은 피엠텐으로 가득 차 있을 이곳에서 떠나 있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그리고 아내만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들에게 이러한 곳에서 살도록 만드는 것이 아버지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3. 왜 서울대기오염소송인가.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싫든 좋든 서울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서울대기오염소송은 서울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끔찍한 곳이라면 어떻게든 이곳을 바꿔 살만한 곳으로 바꿔야 한다는 운동의 일환이다. 대기오염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로 인해 누가, 어떤 피해를 받는지 객관적으로 밝히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한 후 서울의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논의를 위해 서울의 대기를 깨끗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국가와 서울시)와 주된 대기오염 배출원인 자동차를 생산 및 판매하는 자동차 회사의 책임을 우선 법원에 물었다. 소송에 원고로 참여한 이들은 천식, 만성 기관지염, 폐색성 폐질환등의 호흡기질환자이다. 서울의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직장생활과 학교생활, 그리고 직장 선택 등 일상생활 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다. 특히 이런 환경성 질환에 대한 치료비가 전적으로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되어있어 이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커져가고 있다. 때문에 서울대기오염소송은 맑은 공기, 건강한 세상,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소송이며 대기오염으로 인해 건강을 빼앗긴 국민의 환경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다.
4. 소송 제기 그 후
지난 8월 29일 첫 준비변론이 서울지방법원 준비절차실에서 열렸다. 소장이 법원에 제출된 지 6개월만이었다. 그간 원고와 피고 측은 서면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이날은 서로가 주장하는 쟁점들을 확인하고 향후 소송의 진행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원고측은 서울시와 국가가 대기오염 규제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않았고 대규모의 도로 확장을 통해 대기오염을 가중시킨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들이 생산한 자동차들이 대규모의 오염을 야기 시킬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배출가스저감을 위한 기술개발을 게을리 하고 이윤추구에만 몰두한 자동차회사 역시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국가, 서울시, 자동차회사들은 향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기준(가이드라인)을 초과하는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할 것을 금지해야한다고 원고들은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정부보다 엄격한 대기오염규제 기준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 도로를 확장한 것 자체가 설치∙관리상의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기준보다 강화된 기준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를 원고 측에 물었다. 정부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대기오염규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점을 들어 국가의 과실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원고 측에게 일반적이고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자동차회사들의 주장은 자동차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연구마다 다르고 대기오염배출관련법규는 행정적인 단속규정뿐만 아니라 형사책임까지 규정되고 있어, 이 규정이 지켜지고 있다면 민사상 책임은 면책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심각한 대기오염이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잘못된 교통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고 대리인 측은 이날 국내에 자동차배
출가스와 기관지천식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역학조사가 국내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 소송을 진행하는 도중 약 3년에 걸친 객관적인 역학조사를 법원과 피고들에게 제안하기로 했다. 결국 앞으로의 주요 쟁점은 헌법상 환경권이 구체적인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서울의 대기오염의 주된 원인이 자동차 배출가스인지, 이 자동차 배출가스가 기관지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지, 영향을 미친다면 도로변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범위까지 인과관계가 인정될지의 여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요건을 만족하는 피해자가 원고로 참여하는데 있을 것이다. 가령 도로변 가까이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이 걸린 이들 말이다.
5.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
올 초 1월 판결이 난 담배소송의 경우 1심 판결이 나는 데만 무려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서울대기오염소송 또한 언제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석훈 박사가 그의 책을 통해 내다본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해질 시기는 2008년에서 2015년 사이이다. 하지만 이 기간은 법률 논쟁이 정점에 달해있을 가능성이 크고 우리의 아이들은 계속 심각한 대기오염에 노출되어 있어야 한다. 혹자들은 왜 소송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하는지를 묻는다. 이런 운동방식이 아직 우리사회에서 정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법원의 판단에 기대는 것은 유리한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재판부라고 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과거의 언어인 법으로 판단을 하는 이상 항상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재판부의 판단을 계속해서 묻지 않는다면 법은 과거에 속한채로 남아있고 결국 우리의 미래까지 구속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역사공부를 하는 이유가 역사를 통해 현실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재판부가 법을 통해 현실 문제를 끊임없이 판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신영복 선생의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버스중앙차로제가 실시된 이후 양재꽃시장, 양재역, 강남역등 교통량이 많은 지역에서 실시된 대기질 조사에서 한 시간 평균 미세먼지 피엠텐의 농도가 최저 96.2㎍/㎥에서 최대 597.7㎍/㎥을 기록했다. 가히 살인적인 오염농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될 나의 아내와 아이가 그 중앙버스차로에서 이런 미세먼지에 노출된 채로 버스를 기다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서울대기오염소송을 대충 준비할 수 없는 이유이다.
< 이 글은 초록정치연대에 원고로 제출한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