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기다려도 ‘군용비행장 소음 특별법’ 감감 무소식

2009년 10월 13일 | 활동소식

 

 

군용비행기가 지붕위를 바로 날아가고 있다 / 강릉 군용비행장 @녹색연합

“떴다 떳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비행기는 모든 아이들에게 로망의 대상이다. 비행기가 아무리 로망의 대상이라지만 60년 이상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지붕위로, 논밭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닌다면 그것은 로망이 아니라 고통이다.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때문이다.

비행기 가운데서도 군용항공기와 사격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민간항공기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에는 45개의 군용비행장과 1,453개의 사격장이 있다.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군용비행장과 17개의 사격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인구가 약 68만명에 이르고 있다. 군소음 피해 영향 범위도 여의도 면적의 193배에 해당한다. 엄청난 규모다. 단일한 원인으로 피해인구와 범위가 군용비행장과 사격장만큼 큰 것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군용비행장과 사격장 주변 주민들은 소음․진동 피해를 수십 년간 참고 견뎌왔다는 점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시도 때도 없이 굉음과 폭음에 시달리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지 못했지만 참고 견뎌야 했다. 이유는 단하나 ‘국가 안보’이다.

 

광주 광산구는 군용비행기 소음이 심각하지만 신도시로 개발되었다. 아파트 위를 군용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 녹색연합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난청, 스트레스, 수면장애는 물론 심할 경우 정신질환까지 일으킨다. 그래서 주민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일상대화에서도 싸우듯이 이야기한다. 재산상의 피해도 크다. 소음․진동으로 집에 균열이 생기기 일쑤고, 이사를 가려해도 집을 팔기 어렵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기 어렵다. 군용비행장 주변 지역 학생들은 학습 성취도가 타 지역보다 더 낮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건강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육권까지 침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들은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8년 이후 10년 동안 제기된 민원만 1,523건에 달하고 있다. 주민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1998년 이후 23개 지역에서 182건이 발생하였다. 소송인구만 약69만 명이고, 청구액은 약 3,562억원이다. 하지만, 민원과 소송으로는 주민들이 받고 있는 소음 피해를 떨 끝만큼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소송에서 이겨도 비행기는 여전히 밤낮으로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고 있다. 군용 비행장과 사격장의 소음을 방지하고, 피해 보상을 해줄 근거 법이 없기 때문이다.

1988년 당시 건설교통부와 국방부 사이에 군용항공기 소음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연기되었다. 국방부에서도 2001년 군 소음 특별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국회의원들은 16대 6건, 17대 3건으로 총 9건이나 군 소음 특별법을 입법 청원했다. 2008년 4월에는 국방부에서 ‘군용비행장등 소음피해방지와 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여 지자체를 중심으로 의견도 수렴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 문제로 법률 제정은 요원하다. 20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군용비행장 소음 피해는 또다시 주민들만의 몫으로 남겨졌다.

정부는 지금 녹색성장기본법 제정을 초스피드로 추진하고 있다. 1월 15일 입법예고, 28일 공청회, 29일 의견수렴 마감, 2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법률 제정까지 불과 45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연초 국회는 입법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85개나 되는 법안을 확충하여 국회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1월의 입법전쟁은 2월 임시국회를 기약하며 마무리되었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45일 만에 법을 만들 수 있는 나라다. 악법이라는 비판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반대가 있어도 85개나 되는 법률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다. 대표적인 민생법안인 군용비행장 소음특별법은 60년을 참고 기다려도, 법 제정 논의 후 20년이 지나도 제정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의 현실이다.

18대 국회에도 이미 3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군용비행장 소음특별법’을 발의했다. 더 이상 정부와 국회는 예산을 핑계로 법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 하루만 군용비행장 주변에서 살아보라.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비명이 바로 나올테니.

글 : 환경소송센터 정연경 사무국장

* 본 원고는 2009년 1월 30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