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유류오염 보상금 1조원으로 높일 수 있을까?

2009년 10월 13일 | 활동소식

 

▲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정부 대응 촉구 기자회견 시민사회관계자들이 정부에게 피해주민들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유류오염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의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글 : 김 혁 환경소송센터 정책팀장

살림이 넉넉했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지인을 통해 보험에는 가입했다. 문제는 보험가입 비용이었는데 몇 가지 질병을 포기해야 보험료를 낮출 수 있었다. 월 보험료가 많이 나가는 암보험을 빼는 게 어떻겠냐고 상담자에게 물었다. 암 보험을 빼는 건 셔츠에서 몸통 부분을 잘라내는 거란다. 암 보장이 되지 않으면 보험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차라리 뇌졸중을 뺄 것을 권유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 뇌졸중에 유전적 요인이 있을 수도 있고 주위 많은 사람들이 이 질병으로 고생하는 걸 봐온 나다. 한 개인이 보험을 가입할 때도 이렇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 보게 된다.

2월 19일 오후 4시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다. 120가지 안건 중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국제유류오염기금(이하 아이오피씨) 추가협정을 국내법에 도입하자는 안이다. 물론 2003년 추가협정에 우리나라도 가입한다는 게 전제되어있다.

기존 약 3000억 배상한도로 제한되어 있는 유류오염 보상금을 약 1조원 정도로 높이자는 것인데, 이런 논의는 2005년에도 있었다. ‘2003 보충기금협약 가입 및 유류오염손해보상체제 개편논의에 대한 대응방안’에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검토한 것이다. 내용을 검토했던 연구원은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건이 있었지만 기본협정의 배상한도(약 3천억 원)를 초과할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채 2년도 되지 않아 삼성중공업 서해기름유출 사건이 터져버렸다. 엄격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기로 악명 높은 IOPC조차 이번 기름유출 사건 피해액을 6013억으로 추정했다. 피해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피해액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보상한도액은 이미 넘어서 버렸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3000억이란 보상한도 때문에 사건초기 피해자들은 피해입증을 위한 자료수집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대정부 및 대삼성 시위를 벌여야 했다. 피해입증은 고사하고 적극적인 생태복구 및 건강보호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되지 않았다. 2005년 당시 정부가 추가기금에 가입하지 않았던 게 뼈저린 고통으로 남게 되었다. 유류오염손해보상체제 개편논의 때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오피씨 보상한도를 1조원 규모로 올리는 추가협정의 계기가 된 것은 ‘2003년 프레스티지호 기름유출 사건’이었다. 스페인 정부가 6만 3천 톤의 기름유출 복구 작업에 나서보니 3천억 배상한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피해가 있다면 보상을 해주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며 스페인 국가보험사 콘소르시오가 직접 나서 피해액을 산정하였다. 경제전문가들이 나섰고, 입증 자료를 위해 정부차원의 여러 연구들을 진행하였다.

“모두가 만족하는 피해보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아이오피씨의 상대가 스페인 정부였기 때문”이라고 스페인 해양오염방제센터 뿌레까시옹씨는 말했다. 사건 후 6개월에서 2년까지 피해지역을 어업금지구역으로 묶기도 하였다. 생태복원을 위한 조치였지만 피해주민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묘안이기도 했다는 게 야생동물보호기금(WWF) 해양담당 로드리게스의 평가다.

어업이 금지된 기간도 영업일수로 계산해 보상금을 지불했다. 스페인 정부의 이런 노력으로 갈라시아 해안은 살아났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옛 명성을 완전히 되찾았다. 돈줄이 말라버린 어민들이 경쟁적으로 서해 밑바닥을 뒤져야 하는 한국 상황과 무척이나 대비된다.

프레스티지호 사건 이후 스페인 정부는 무려 7번이나 관련 특별법을 발표했다. 최초 법안은 사건 후 9일만에 나왔다. 피해주민을 위해 애써본 정부라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하며, 마련된 비용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이것이 스페인 정부가 아이오피씨 보상한도를 1조원으로 올리는 추가협정을 제안한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아이오피씨와 관계가 깊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주요 기름유출 사건 26건 중 8건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다. 석유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운송 유류 수령량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오피씨 가입국 중에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수산자원에 대한 의존도도 크다. 에리카 호와 프레스티지호 사건 이후 유럽 해양운송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진 관계로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노후한 선박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초대형 유조선 중 단일선체가 60%에 이른 다는 게 이를 반증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이냐가 아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일어날까 여야 한다.

이제 아이오피씨 추가기금 의정서 내용을 국내에 도입할지 여부는 이제 국회에서 결정될 것이다. 법안심사소위 의원들은 우리가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 현재 적절한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지 갱신할 필요는 없는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토록이나 엄청난 사고 이후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치욕스러운 일일 것이다. 2월 23일 국토해양부 법안심사소위가 어떤 결론을 낼지 관심을 가지는 까닭이다.

이 원고는 오마이뉴스에 2월 19날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