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서재] 안현지 변호사의 코스모스 다시 읽기

 

안현지 변호사(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국선전담 변호사, 녹색법률센터 운영위원)

 

[녹색서재] 코스모스 다시 읽기

 

1980년에 나온 이 책은 저자 칼 세이건이 1996년 사망한 지 한참 된 지금도 서점 매대에 누워있는 살아있는 고전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 석좌 교수 장하석은 중학생 때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원서로도 읽고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칼 세이건에게 편지를 보내고(답장은 못 받았다고…)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올해엔 부인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도 나와 잘 안 알려진 우주탐사 영웅 유리 콘트라튜크 등을 되살리고 그동안 천문학과 우주 탐사 분야의 진전을 소개하며 칼 세이건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시 읽었는데 처음 보는 책인 양 흥미진진했다. 기억력이 나빠져서 이런 좋은 점도 있다. ‘자연의 첫 번째 변호사’ 녹색법률센터 활동을 해서 그런지 이번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가 마음에 다가왔다.

칼 세이건은 금성 얘기를 하다가 넌지시 우리 지구 얘기를 한다.

태양, 달에 이어 세 번째로 밝게 빛나는 금성(Venus)은 아름다운 이름과 이미지와는 달리 “완전히 몹쓸 세상”, “지옥의 상황이 그대로 구현된 저주의 현장”, “대참사가 벌어지는 내행성계의 한 세계”라고 하는데 그 실체를 알면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금성은 기온이 오븐보다 더 뜨거운 480도까지 올라가고 표면 대기압은 지구의 90배인 90기압이며 시속 360km의 바람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로 불고 대기의 96%는 이산화탄소이고 농축 황산 구름이 떠 있고 내리다 증발해 버리는 황산비가 내린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도 화성에 가자고는 해도 금성에 가보자고는 안 하고 테라포밍(Terraforming: 지구화) 대상에서도 과학소설 배경에서도 밀린다.

금성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구는 왜 이렇게 안되었을까?

칼 세이건은 금성이 지구와 중력은 비슷하지만 태양에 조금 더 가까워 뜨거워진 표면 온도가 탄산염을 이산화탄소로 기화시키고 이산화탄소가 적외선 복사열을 가두어 온실 효과로 인해 온도가 상승하고 상승된 온도가 이 과정을 점점 가속시켜 온실효과의 폭주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본다.

지구는 사람 살만한 기후인데 이게 실은 보장된 것이 아니다. 불안정한 평형 상태이다. 지적 생물의 활동으로 이 평형 상태가 깨져 금성같이 온실효과 폭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 제발 그러지 말자는 게 칼 세이건의 경고다. 잊고 살면 일상의 행복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우리 그러면 안된다.

 

또 한가지 녹색법률센터 활동을 해서 그런지 이번에 유독 마음에 다가온 것이 있다. 우주의 광대함과 광대한 우주에 핵폐기물을 버릴 가능성. 우주는 어찌나 광대한지 지금까지 외계 생물체의 흔적도 발견 못했지만 칼 세이건의 계산에 의하면 외계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대한 우주에 외계 생물체에게 해가 안되게 핵폐기물을 버린 공간도 무궁무진한 거다. 핵발전을 하면 온실가스를 덜 내뿜어 좋은데 지구에 핵폐기물을 버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안전하게 우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핵폐기물을 우주 공간으로 나른 후 영원히 우리와 멀어지는 여행을 보내버리는 거다. 1977년 발사되어 태양계를 벗어나 지금도 가고 있는 보이저호처럼.

 

외우주 탐사선 보이저호가 이렇게 멀리 가는데 이용한 방식은 중력도움(swing-by)이다. 유리 콘트라튜크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소련의 탄압 속에서 밤 하늘을 보며 우주여행을 상상하며 쓴 논문에 담긴 이 아이디어는 보이저호를 그렇게 멀리 보냈고 아폴로호가 달에 닿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한 인간에게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정신세계가 있었다는 것은 정신세계 따위 다 파괴 가능하다는 소설 ‘1984’보다 확실히 위안이 된다. 이름없이 전쟁에서 죽은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가 담긴 논문을 누군가가 보고 우주 탐사의 꿈을 실현하였다는 이야기는 밤하늘을 볼 때 이따금 생각이 날 것 같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인생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더라도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고 중국작가 류츠신의 과학소설 ‘삼체’를 읽을 때에도 영화 ‘인터스텔라’를 볼 때에도 더 구체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추천의 말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