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윌슨의 《어반 정글》을 읽고
인턴활동가 강다현
‘리버’, ‘포레’ 등 자연의 요소를 강조한 브랜드 아파트의 이름이나, ‘숲세권’, ‘아파트 라이프에 자연을 더한다’는 것과 같은 광고 문구를 자주 마주치곤 한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식물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 ‘반려식물’이나 ‘식집사’와 같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는데 자연에 대한 도시인의 갈망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지점인 것 같다.
《어반 정글》이 읊어주는 도시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도시 속에 시골을 품으려는 이상은 최초의 도시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아즈텍의 도시 정원부터 산업화 시기 서구의 공원 조경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도시인의 한결같은 갈망과 그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지켜볼 수 있어 흥미롭다. 통제된 도시 안에서 자연을 손쉽게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한결같아 씁쓸했지만.
대체로 도시와 야생은 서로 공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어 왔다. 오랜 산업화를 지나온 우리에게 도시화는 자연을 파괴하는 힘이고, ‘진짜 자연’은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도시화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으로 도시가 숲과 습지와 황무지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던 때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도시와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서 우리가 도시 생태계로부터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도시를 자연의 일부로서 번성하게 할 수 있을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도시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생태적 가치는 더욱 놀랍다. “포장도로의 갈라진 틈, 건축 부지, 숨겨진 늪, 형편없는 불모지 등” 이제까지 외면받던 지역에서 살며시 고개를 드는 동식물에 관한 이야기는 도시인들이 이미 자연과 뒤엉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를 도시가 어떤 모습이든 자연은 거뜬하다는 식의 이야기로 오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것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충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자발적으로 피어난 생명의 이야기에 가깝다.
자연을 인간 중심적인 방식으로 길들이거나 몰아내려했던 시도의 흔적들이 도시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식민지 탐험가들의 이국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외래종 씨앗의 수입과 정원 문화의 유행, 야생 생물의 자발성과 지저분함을 통제하고 나아가 사람들까지도 개선하려는 인간의 충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19세기의 도시 공원… 저자의 말대로 도시 속 자연의 역사에는 인간의 “정치적, 제국적, 미적, 도덕적 충동”이 깊게 얽혀 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베를린의 브라헨을 뒤덮은 강인한 비토착종 식물은 인간이 도시 생태를 영원히 바꾸어버린 방식을 들려준다. 도시에서 가장 잘 자라는 식물이 재난과 관련된 식물이라는 건 여러 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불편한 진실을 나타내는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브라헨에서 피어난 경이로운 생명을 보호하려 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그 불편한 존재감을 직시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잡초를 혐오하고 깔끔함을 추종하던 우리의 미적 선호도가 점진적으로나마 변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생물 다양성에(그리고 나의 생각에는 그외의 다양성에도)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는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는 저자의 말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우리가 저지른 짓 너머로, 그동안 박해하고 외면해왔던 지저분한 자연을 보게 된다.
저자는 그동안 잘 관찰하지 못했던 도시의 생태계로서의 잠재력을 보는 것을 출발점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과 함께 살고자 하는 충동이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면,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는 인간의 활동과 자연적인 과정의 관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선호하는 고층 건물은 공중에서 급강하하기에 안성맞춤”이라 느끼는 송골매와 어떻게 더 잘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의 힘과 힘겹게 싸우지 않고 어떻게 자연의 흐름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외부에서 식량을 받아오고 폐기물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순환적 회복력을 갖춘 생태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도시에 자연을 담는 게 아니라, 자연에 도시가 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 출처: (주)알라딘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