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속가능경영원’(이하 경영원)은 [스위스, ‘호프만 법안’의 주요내용과 시사점]이란 내용의 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경영원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호프만 법안은 개발사업의 지연 및 중단으로 야기된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할 것과 환경단체의 단체항소권 오남용 방지를 위한 법적제어장치를 담고 있다. 문제는 경영원이 내놓은 시사점이다. 경영원은 스위스 ‘호프만 법안’이 주는 교훈을 통해 환경단체의 권한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원이 발표한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스위스가 환경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시민환경단체의 항소권이 커다란 역할을 했음을 볼 수 있다. 국내의 환경단체와 달리 스위스 환경단체들은 1966년부터 개발 사업에 대한 항소권을 부여 받았다. 역사적으로 63%에 달하는 단체항소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무분별한 개발계획이나 개발 사업을 지연 또는 중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얻은 것은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적인 자연 환경과 관광 산업이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호프만 법안’은 환경단체의 항소권을 제한하기보다는 항소권이 책임 있게 행사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조직에 한 할 것, 해당 부분에서 10년 이상 활동했을 것, 단체장의 이름으로 항소권을 행사할 것 등등. 이는 얼핏 보아도 합리적이고 타당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행법상 환경단체는 어떠한 항소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환경파괴가 아무리 큰 국책사업의 경우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원고의 자격은 ‘환경영향평가 대상 지역 내 주민’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개발 사업의 폐해는 전국적인데 비해, 원고 적격의 기준은 법이 그어 놓은 별 의미 없는 기준에 갇혀 있는 현실이다.
백번 양보해서 스위스의 사례에서 배울 것이 있다 치자. 그래도 문제는 항소권의 남용에 있지 항소권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 더욱이 원고자격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경영원의 연구진은 이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애써 주장하고 싶어 무리한 논거를 제시한 경우라 볼 수밖에 없다.
스위스에게 환경단체의 항소권은 개선돼야 할 전제이지 결코 폐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가 호프만 법안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오히려 지난 40여 년간 유지되면서 스위스를 환경 대국으로 이끈 환경단체의 항소권 운영사례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합리적 개선 노력이 아닐까. 개발주체나 환경 보전 진영이 좀 더 책임 있게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현행법의 개선과 대안을 모색하는 길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