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분쟁지역 답사기 – 국토의 아픔과 함께 한 4일

2009년 10월 13일 | 활동소식

국토의 아픔과 함께한 4일

사법연수원 37기 박판규

답사를 목전에 둔 집중호우로 답사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지에 대한 의문이 있던 상황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첫날 자병산을 향했다. 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였는데 고속도로 주변의 국도에는 유실된 국도, 지방도가 있었고 토사에 휩쓸린 마을들이 곳곳에 보였다. 하천은 거센 물살을 이루며 금방이라도 넘칠 듯 보였고 고속도로에도 간간이 낙석이나 토사가 있었다. 어쩌면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환경답사를 나서는 나의 마음을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자병산에 도착했지만 산위의 운무로 인하여 현장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단지 관측지점에서 들리는 거대한 기계소리는 산이 우는 소리마냥 가슴을 아프게 했다. 책이나 영화에서 본 듯한 자병산의 기계소음은 아직도 우리의 산들이 산업화 초기의 개발논리에 여전히 무방비로 당하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신음소리로 알리려는 듯 했다. 사진으로 본 자병산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예전 강원도 고성군 산불현장을 갔을 때 느꼈던 처참함을 다시 느끼게 하였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먹을 것이 부족하여 그리도 잔인하게 산들을 깎아내는 것일까? 여행을 다닐 때마다 마주치는 국도 옆의 벌겋게 속살이 패인 절벽과 곳곳의 골프장건설로 벌거벗겨진 산과 언덕을 보면 그것을 보면서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잔인함을 보며 문득문득 무서워졌다. 우리에게 자연은 아직도 개발을 위한 타자에 불과한 것인지 이제는 자연이 우리 자신의 존재근거로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진에 도착했을 때는 난 왕피천의 생각에 머물러 호우로 인하여 아름다운 자연을 보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울진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에 미치자 불과 3일전에 영광 원자력발전소를 갔던 기억과 맞물려 생각이 복잡해졌다.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위한 정부의 홍보광고나 책자에는 핵폐기장의 유치로 인하여 지역경제와 인근주민의 복지가 훨씬 좋아진다고 알고 있었다. 이것은 핵폐기장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를 위한 홍보에도 여전히 이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영광이나 울진은 정부의 약속이 과연 지켜질 것인지 나아가 그것이 지역주민들에게 어떠한 혜택이 될 것인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영광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하지만 볼수록 마치 거대한 그리고 도저히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시한폭탄같이 보였다. 정말 만의 하나 백만분의 일의 가능성의 사고가 있다면 이곳의 사람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될 것인가?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사람의 일이 아무런 일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맹종이 사람의 일이라는 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답사에서 예비법조인으로서 가장 안타까웠던 곳은 천성산과 을숙도였다. 두 곳 모두 개발에 의한 자연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배우는 법에 의하면 가처분은 보전의 필요성이라는 요건을 통하여 개발중단에 의해 얻게 되는 가치와 개발에 들어간 비용 및 개발로 인한 편리함의 비교형량에 의해 더 큰 가치를 판단하여 그 요건의 충족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개발이 일단 착수된 후에는 저울의 한 쪽인 개발에 따른 이익 및 진행된 과정에 들어간 비용 그리고 소송의 진행에 따라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비용이 점점 증가하게 되어 결국 저울의 한 쪽은 점점 무거워지는 반면에 개발중단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이익은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게 된다. 더군다나 법원은 환경보존에 따른 국가나 지역주민들 나아가 국민들이 갖게 되는 무형의 이익에 대한 평가에 소극적이다 보니 이러한 개발에 의한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소송에 의한 구제가 더욱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볼 때 국가에 의한 개발에 대한 법원의 근본적인 인식전환, 나아가 구체적인 개발의 착수이전에 정보의 공개를 통한 계획단계에서의 적극적인 법적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법조계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천성산과 을숙도, 그리고 새만금의 문제는 그 문제가 현실화될 때만이 소송에 의한 문제제기가 가능할 듯싶다. 하지만 그때에 그 속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의 땅은 소송으로는 회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천성산을 관통하는 18km의 터널과 을숙도를 단절시키는 명지대교, 그리고 새만금의 죽어가는 갯벌은 모두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환경에 관한 성적표가 아닐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천성산 계곡의 물은 이제 어디로 흘러가게 될 것이며 을숙도의 수많은 철새들은 또 어찌될 것인가? 왜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무지한 자만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과학으로서의 법을 공부하는 나는 지식이 갖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답사를 통해 법이 가지는 한계를 다시 실감하지만 동시에 법에 의한 가능성도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한번 훼손되면 다시 살리기 어려운 자연을 보고 환경파괴가 법에 의해서 면죄부를 받는 것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또한 법에 의한 일말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어려운 숙제를 부여받은 느낌이다. 나와 내 아이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며 그것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