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녹색칼럼] 습관적 잊어버림 – 지난 여름을 다시 떠올리며

2021년 1월 25일 | 녹색칼럼, 활동

글. 이병일 변호사(법무법인 새길 변호사, 녹색법률센터 소장)

 

[신년 녹색칼럼] 습관적 잊어버림 – 지난 여름을 다시 떠올리며

 

오늘도 눈이 내립니다. 서울에서 겨울 눈 구경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기억인데…지지난 주에도 아이들이 좋아서 깜빡 놀랄 만큼 눈이 쏟아졌는데, 오늘도 내리는 모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퇴근길이 심히 걱정이 되네요. 그래도 아이들은 눈 맞은 강아지 마냥 뛰어다니겠지요. 내리는 눈이 그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낭만을 잊어버린 나이 때문인지, 퇴근길 걱정 때문인지, 아님 지난 해 여름의 기억 때문인지..

작년 여름에는 흔히 하는 말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주룩주룩 비가 내렸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최장 54일간 이어진 지난 장마는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하네요. 코로나 19로 어디 마음 놓고 다닐 수도 없는 상황으로 가뜩이나 우울한 기분이 더 깊어졌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해가 뜬 맑은 하늘 한번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쉽지 않았던 지난 여름.

‘어.. 올해는 비가 좀 많이 오네 라던 생각이.. 좀 심한데..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야.. 설마 이러다가 큰일 나는 건 아니겠지,. 도대체 언제까지 내릴 건데.. 혹시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 이럴 건가?’ 의아함이 걱정으로, 걱정이 두려움으로 바뀌었지만, 곧 계절이 바뀌어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로 시간이 흐르면서 지난 여름 기나긴 폭우의 기억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흐릿해집니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적 반복으로 인한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해수면의 변화는 늘 있어 왔기에 현재 인류는 11만년 전에 시작되어 1만 2천년 전에 끝난 마지막 빙하기 이후 약 1만 2천년 정도 지속되고 있는 간빙기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주된 원인이 되어 초래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생물종의 대멸종 또한 지구 역사상 이미 5번 이루어졌으며, 인간에 의한 지구상의 생물종의 멸종은 이미 시작되어 이를 6번째 대멸종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놓고 생각하면 기후변화도, 그로 인한 대멸종도 기나긴 지구와 우주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다른 5번의 대멸종은 자연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지질학적으로 긴 시간에 이루어진 반면, 인간에 의한 대멸종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고, 다른 5번의 대멸종으로 인해서는 당시까지 살고 있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종들이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번 6번째 대멸종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지, 멸종으로 사라질 생물종의 목록에 무엇이 들어갈지, 인류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될 지는 시간이 지나봐야지 알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우리 세대에는 아닐 듯합니다만.

지구 기후는 오랜 시간 동안 매우 큰 폭으로 변화해 왔고,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영향이 아닌 지구의 공전궤도, 자전축 기울기, 자전축 흔들림의 주기적인 변화가 기후 변화의 원인이라는 논쟁도 지속되고 있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류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어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입장도 있고, 기후변화도, 종의 멸종도 지구역사에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인위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은 처음이며, 그 규모와 속도가 광범위하고 빠르다는 점에서 그로 인한 충격과 결과에 대해 두렵습니다.

선박의 복원력이 부족해지면 전복될 위험에 처하고, 배의 침몰로 인한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알 듯이, 자연의 회복력과 인류를 비롯한 생물종들의 생존과 우리 미래세대를 걸고 기후변화의 결과에 대해 도박을 하기에는 그리 큰 위험은 초래되지 않을 거야라거나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까라는 낙관에만 의지하기에는 그 변화의 규모나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고 그로 인한 위험도 너무나 큽니다.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에 대해 각국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행동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시민들이 환경단체인 우르헨다 재단의 주도로 2013년에 제기한 소송은 7년만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을 비롯하여 현재 벨기에와 유럽연합, 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기후변화 관련 소송이 진행 중에 있으며, 필리핀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피해에 대해 다국적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0년 3월 청소년 기후 운동 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정부 등을 상대로 국내 첫 기후변화 관련 헌법소원을 청구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2020년 12월 6개 단체로 이루어진 기후위기인권그룹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농업인 가스검침원, 방송노동자, 건설노동자, 해수면 상승지역 거주민, 기후우울증 피해자, 청소년 등 41명의 진정인들이 기후위기로 인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생명권과 건강권 등 인권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에게 인권침해의 중지 및 재발방지를 위한 구제조치 이행권고 및 법령 제도 등의 시정 또는 개선 권고 등을 구하는 진정을 제기하여 현재 진행 중이고, 우리 녹색법률센터와 녹색연합도 위 기후위기인권그룹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1년을 넘게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이, 늘 상 있는 해고와 산재의 위험이, 예측하기 어렵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농수산물 가격이, 퇴근길 걱정을 포함한 하루하루 일상생활의 고달픔이 더 커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기후위기는 우리가 인식을 하고 있거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거나, 이미 우리생활에 상존하는 위험이 되어 버렸음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GDP 순위, 세계교역량에서 차지하는 규모,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등을 생각하면 기후위기에 관한 대한민국의 책임에 대해, 이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일상생활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의 한 명으로서,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일부분으로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너무 늦지는 않았을 것을 소망해봅니다.

▲ 지난 8월 폭우에 물에 잠긴 전남 구례군 읍내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