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 보일러와 녹색생활

2022년 2월 7일 | 녹색칼럼, 활동, 활동소식

보일러와 녹색생활 (인턴활동가 이호찬)

 

 

여러분은 녹색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녹색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죠. 대중교통, 다회용기, 재활용,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 등.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녹색생활일까요?

 

‘녹색생활’은 법에서 명시한 단어입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약칭: 탄소중립기본법)」 제67조 제1항은 녹색생활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생산·소비·활동 등 일상생활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녹색제품으로 소비를 전환함으로써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생활”

 

 

탄소배출을 비롯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녹색생활을 해야 하다는 취지겠죠. 여기서 우리는 ‘녹색제품으로 소비를 전환’한다는 점에 주목해보려고 하는데요, 「탄소중립기본법」 제66조 역시 소비를 핵심요소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66조(탄소중립 사회 이행과 녹색성장을 위한 생산·소비 문화의 확산)

① 정부는 재화의 생산·소비·운반 및 폐기(이하 “생산등”이라 한다)의 전 과정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온실가스의 발생을 줄일 수 있도록 관련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② 정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제고하기 위하여 재화 및 서비스의 가격에 에너지 소비량 및 온실가스 배출량 등이 합리적으로 연계·반영되도록 하고 그 정보가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공개·전달되도록 하여야 한다.

④ 정부는 에너지·자원의 투입과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제품(이하 녹색제품이라 한다)의 사용·소비의 촉진 및 확산을 위하여 재화의 생산자와 판매자 등으로 하여금 그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 등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의 양에 대한 정보 또는 등급을 소비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표시ㆍ공개하도록 하는 등의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정리하자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제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는지 확인하고, 그 중에서 녹색제품을 골라 소비하고, 이러한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법이 말하는 녹색생활의 핵심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용 보일러라는 제품

 

‘그래서 보일러가 녹생생활과 무슨 상관이냐’고 의문을 품으실 수도 있으나, 먼저 드릴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마트폰을 새로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제품이 궁금해서, 특정 제품의 디자인이나 성능이 마음에 들어서, 쓰던 폰이 느려지거나 고장 나서 등 각자의 기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대상을 바꿔보죠. 여러분이 보일러를 새로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인지 질문도 어색하고 대답하기도 어색하지 않으신가요? 그건 아마도 보일러는 새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주기가 비교적 길기 때문일 겁니다. 스마트폰은 평균 2년 정도 사용 후 교체하는 반면 보일러는 7년에서 많게는 10년까지도 사용합니다. 고장 나지 않는 이상 디자인이나 유행을 이유로 2년마다 교체하진 않으니 새로 사는 이유를 물어볼 필요도 딱히 없는 거죠.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일지라도 보일러는 내구성 좋은 제품이 최고라고 생각할 겁니다. 굳이 교체하지 않고 한 제품을 오래 사용하면 생산 등 전 과정에 드는 에너지도 줄일 수 있겠죠. 물론 오래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녹색생활인 것은 아닙니다.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보일러는 오래 쓸수록 안 좋습니다. 다행히 가정용 보일러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기준에 맞게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쓸수록 친환경적인 제품이 된 상황입니다. 즉 보일러는 사람들이 굳이 교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제품이자 대기오염물질 배출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제품입니다. 녹색생활을 하기에 유리한 제품인 거죠.

 

 

녹색생활을 위한 규제와 인센티브

 

잠시 규제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합니다. 2019년 4월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약칭: 대기관리권역법)」이 제정되면서 환경부는 특별시와 광역시를 비롯해 대기오염이 심각한 지역을 ‘대기관리권역’으로 지정했습니다. 법이 시행되는 2020년 4월부터 대기관리권역에서는 인증을 받아야만 가정용 보일러를 생산, 공급, 판매할 수 있게 된 상황입니다. 인증을 받지 않고 제조·공급·판매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법 제47조).

「대기관리권역법」

제35조(가정용 보일러의 인증기준 등)

① 대기관리권역에서 가정용 보일러를 제조·공급 또는 판매하려는 자는 환경부장관으로부터 보일러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하다는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가정에서 보일러를 설치해야 한다면 대기오염물질(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배출량 인증을 받은 1종 혹은 2종 보일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1종 보일러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만 2종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표1> 참조).

 

 

  1종 보일러 2종 보일러(기체) 2종 보일러(액체) 일반 보일러
열효율 92% 이상 81% 이상 84% 이상 76~83%
질소산화물

(NOx)

20ppm 이하 40ppm 이하 80ppm 이하 173ppm
일산화탄소

(CO)

100ppm 이하 200ppm 이하 150ppm 이하  
주요사항 응축수 배출을 위해 3m 이내 배수구 필요

97%가 보조금 지원 대상임

보조금 지원 대상 아님 보조금 지원 대상 아님 2020년 4월부터 제조·공급·판매 금지

 

대기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보일러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환경부와 지자체가 ‘가정용 저녹스(‘저녹스’는 질소산화물을 적게 배출한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보일러 설치 지원 보조금’을 마련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2022년에는 설치 후 10년이 넘은 보일러를 교체하려는 일반 가정에게 10만 원, 저소득층에게 60만 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용 보일러 정책은 입법부가 「대기관리권역법」으로 제품 생산을 규제하고, 환경부가 ‘가정용 저녹스(친환경 콘덴싱) 보일러 설치 지원 사업’으로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법과 사업으로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보일러 보급을 늘리려는 정책인 거죠. 열효율 높고 연료비 절감되고 대기오염물질도 적게 배출하는 보일러를 사용하라는데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준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해외에도 비슷한 성격의 제도가 있습니다. 규제정책과 함께 추진된 보조금 제도로, 호주의 절수기 보조금 지원 제도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행한 보고서 “녹색소비 인센티브제도 활성화 방안”은 이 제도가 ‘절수효과 입증과 등급 표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품을 시장에 등장하지 못하게 해 기업과 소비자의 관심을 높이고, 절수효과 등급에 따라 세입자를 포함한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성과를 확대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한국의 보일러 정책에서 보조금 지원 대상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의 평균 가격 차이가 10만 원보다 크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더러 녹색소비로 전환하는 비용을 부담하라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만, 이 보조금 지원 사업이 녹색소비로 전환하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는 취지가 담긴 정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녹색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소비자

 

하지만 그 취지가 현실에서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1종 보일러 설치 자체가 어려운 주택이 있습니다. 3m 이내 배수구가 없거나, 배수구 공사가 어렵거나, 보일러실이 좁아 작업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실외 노출로 겨울철 동파가 우려되는 등 주택 구조 문제로 1종 제품을 설치하지 못하면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이런 주택 구조를 가진 반지하나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거나 임차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임차인인 경우도 중요한데, 2021년까지는 임차인은 신청 자격이 없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주택 소유자의 동의를 받으면 가능하지만 임차인 입장에서 본인의 의지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호주의 절수기 정책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은 1종 보일러에 한해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점입니다. 생산 규제로 인해 보일러업체는 2종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해야 합니다(1종 보일러만 생산한다면 1종 보일러를 설치할 수 없는 주택에서는 인증 기준에 부합하는 보일러를 못 쓰게 됩니다). 결국 2종 보일러 생산을 유인했는데 1종 보일러만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건 제도 간 엇박자가 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되었고요.

 

2020년 사업부터 친환경 보일러 전체 보급 실적은 좋다고 합니다. 2021년에는 8월 말 기준 일반 가정 대상으로 계획물량의 80.2%(211,986대 중 157,206대)를 보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소득층 대상으로는 계획물량 대비 보급률이 11.1%(18,420대 중 2,050대)라고 합니다. 물론 사용 중이던 보일러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아서 교체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환경부 역시 앞에서 언급한 주택 구조와 임차인 문제가 저소득층 지원 실적이 저조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10년을 채운다 할지라도 그밖에 현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가정은 앞으로도 지원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결국 이 정책은 녹색소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서

 

앞서 보일러가 (녹색제품으로 소비를 전환하는) 녹색생활에 유리한 제품이라고 했는데요, 유리함을 결정해주는 요소는 생산 규제와 소비자 인센티브, 소비자의 교체 주기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첫째로, 가정의 필수품이라는 점입니다. 에너지를 덜 쓰는 것과 별개로 보일러는 제품 소비량이 확정되어 있다고 봐야 하니까요. 보일러라는 제품은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더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수록 소비가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제품이라서 불리한 면도 있습니다. 보일러는 보일러실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자동차, 옷, 핸드폰, 액세서리와 달리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습니다. 다수의 연구는 소비자가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제품을 구매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일반 제품과 달리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때는, 타인에게 노출되는 정도가 높고 주변 사람들과 그 제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정도가 높은 “공적 제품”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녹색생활에 유리한 제품일수록 더 많은 소비자가 녹색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면 소비자를 한 집단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기보다, 제품의 성격과 소비자 개개인이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따른 욕구와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 녹색생활 정책에 앞서야 할 겁니다.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난방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정당성이 부여되지만, 책임에 따른 실천을 유독 소비자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2019년 환경부가 발행한 자료집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하위법령 제정안 권역별 설명회”에 따르면 전국 미세먼지 배출량 중 난방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5%라고 합니다. 물론 5%가 작아보일지라도 어떤 영역이든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면 친환경으로 전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머지 95%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죠.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지점은 ‘소비자의 선택권’입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제고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대기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는 생산 규제입니다. 이 규제로 인해 가정용 보일러 업체는 친환경 제품 개발에 성공하거나 해당 제품 생산을 포기하겠죠. 실제로 2021년 보조금 지급 건에 한해서 보일러업체 점유율이 1, 2위는 낮아지고 3, 4위는 높아졌다고 합니다. 규제에 부합하는 제품 개발에 성공 후 업체 간 경쟁이 활성화되면 소비자 입장에서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규제로 인해 기업 활동이 위축되거나 독점구조가 형성되면 소비자는 품질 좋은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비용 상승을 방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 비용을 제품에 부과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색제품이라서 다른 제품보다 비싼 경우, 혹은 녹색제품이 아닌 제품에 세금을 부과할 경우 경제력이 큰 소비자의 (녹색제품) 선택권만 확대될 수도 있겠죠. 친환경 규제와 환경 비용 반영이 (모든)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보장해주는지,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면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소비자로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보니 보일러가 녹색생활과 소비자의 선택권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소 무리한 전개를 시도하다보니 이야기가 흩어진 면도 있네요. 그럼에도 한 가지만 희망하자면, 친환경, 지속가능, 녹색 등 어떤 표현이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보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읽히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깊이 있고 정리된 이야기를 건넬 수 있길 바라며…

 

 

참고 자료

김석호·김나민, (2015), “소비자들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가? : 친환경 제품 종류에 따른 소비자 반응을 중심으로”, 마케팅논집, 23(4), 75-94.

배순영·곽윤영, (2011), “녹색소비 인센티브제도 활성화 방안”, 정책연구보고서, 1-125.

환경부, (2019),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하위법령 제정안 권역별 설명회”, 1-153.

환경부 웹페이지, “가정용 보일러 인증제도 안내, 가정용 보일러”, 2022.02.02. 접속, http://www.me.go.kr/home/web/board/read.do?menuId=10392&boardMasterId=713&boardId=1495140

가스신문, (2021), “2022년도 친환경보일러 지원 60만대로 대폭 확대”, 2021.11.17., http://www.ga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982

경향신문, (2022), “친환경 보일러 지원 저소득층 복지효과 ‘글세’”, 2022.01.10., https://www.khan.co.kr/local/Seoul/article/202201102120045

정책브리핑, (2021), “지원금 받고 교체한 친환경 보일러가 지구를 지켜요”, 2021.06.04.,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88036#sitemap-layer

한경경제, (2021), “펄펄 끓는 친환경 보일러 전쟁”, 2021.12.20.,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121985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