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하계 인턴/로스쿨 실무수습 활동 후기

2024년 9월 20일 | 메인-공지, 활동소식

인턴활동가 김유석

녹색법률센터가 위치한 녹색연합 본부의 1층에는 박제된 산양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혼을 잃고서도 뚜렷했던 플라스틱 눈빛에 인턴으로 활동하며 알게 되었던 산양 소송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설악산에 살아가던 산양들은 케이블카 사업에 맞서 변호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원고로서 소송을 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물은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적격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산양 전에 소송을 냈던 도롱뇽도, 후에 유사한 시도를 했던 철새나 황금박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혀 끝을 맴도는 씁쓸함과 함께 산양 옆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푯말을 지나쳐야 했습니다. 제작자도 제작된 시기도 알 수 없었지만 바람이 되어 새 날을 열고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킨다고 목각되어 있었습니다. 동물 뿐만 아니라 법의 언어로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비인간들이 만만불측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존재들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대변하시는 변호사님들과 인턴 기간 동안 만나뵙고 교류하며 새겨진 표어처럼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뜻깊었던 배움의 날들이 저물고 본부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산양과 푯말과 사람들이 눈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턱을 넘어 시나브로 녹색을 잃어가는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으며 꽃처럼 그리고 바람처럼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제는 따라갈 발자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새 날을 열고 이 땅을 지킬 자신은 아직까지 없지만서도 저 또한 우리 모두가 옹호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산양이 생기발랄하게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니 발길이 빨라지는 듯 합니다.

 

로스쿨 실무수습 교육생 이민우

대학교 학부생 때의 여름이었다.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에 참여한 적 있었다. 마을회관을 숙소로 빌려 하루 세끼를 직접 지어 먹고 낮에는 농사를 도우며 밤에는 농촌, 생태 문제에 대한 교양학습을 진행했다. 녹색연합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그때의 풍경이 다시 머리를 스쳐갔다. 사무실 2층 한켠엔 빼곡한 책장으로 둘러쳐진 작은 공간, 녹색법률센터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소박한 사무실은 센터를 구성하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센터는 일종의 네트워크였다. 즉, 한 분의 상근변호사와 다수의 운영위원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원생 인턴인 필자와 대학생 인턴 둘로 구성된 우리들은 실무실습 기간 동안 운영위원 한분 한분을 만나뵙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환경 전문 공익법률단체가 다루는 쟁점 분야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적인 송무 변호사가 환경사건을 맡는 경우는 극히 손에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몇 안되는 환경사건은 공해, 동물권, 기후, 자원순환, 자연보호 등 다양한 분야로 전문화되어 있고, 또 각각의 분야를 전담하는 변호사 분들이 계셨다. 센터는 그런 변호사 분들이 한데 모인 공간으로, 국내에서 환경 관련 공익법률단체로는 아마 가장 규모가 큰 곳일 것이다. 그 중에는 정책연구기관에서 기업의 ESG 경영을 주제로 입법 연구를 하는 분도, 굵직한 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중요 법리를 바꿔낸 분도 계셨다.

많은 내용을 배웠지만 여러 분야에 공통된 내용으로, 결국 환경피해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 평소 몰랐던 사실들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순환경제’라는 개념도 그렇고, 동물학대의 대부분은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축을 대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도 배웠다.

물론 강의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법률 문서를 작성해보는 시간도 있었다. 멸종위기종 서식지 파괴를 이유로 환경부장관에 대한 모의 고발장을 작성하는 과제였다. 직접 문서를 작성해보니 어떤 법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그 법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논리 구조는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지, 논리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등 보다 실무에 가까워진 문제의식을 품을 수 있었다.

녹색법률센터에서의 실무실습은 단순히 법률적 지식을 쌓는 것 이상의 경험이었다. 다양한 환경 쟁점을 탐구하며 환경 사건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인과관계 입증이 핵심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동물학대나 멸종위기종 보호 등 그동안 간과했던 문제들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다. 법적 문서를 직접 작성하며 실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었고, 공익법률 활동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체감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