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 화학 3법과 화학물질 관리의 법적 과제

2021년 9월 2일 | 녹색칼럼, 활동

 

 

 

박종원 부경대 법학과 교수 (녹색법률센터 회원)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가습기살균제 사건, 지금 돌이켜봐도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들 사건·사고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우리나라 화학물질 관리법제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종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체제에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체제로 탈바꿈한 지 6년 반,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살생물제법”)이 시행된 지 2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우리는 화학물질과 화학제품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환경법원칙과 화학물질 관리

화평법, 화관법, 살생물제법 이들 ‘화학 3법’ 제정의 기초에는 사전배려원칙(Precautionary Priniciple), 원인자책임원칙(Polluter-Pays Principle) 등 환경법원칙이 자리하고 있다. 사전배려원칙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는 리우선언 원칙 15에 따르면,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 충분한 과학적 확실성의 결여가 환경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비용-효과적인 조치를 지연하는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나라 환경법의 모법이라고 평가되는 「환경정책기본법」 제7조는 “자기의 행위 또는 사업활동으로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는 그 오염·훼손을 방지하고 오염·훼손된 환경을 회복·복원할 책임을 지며,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에 드는 비용을 부담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원인자책임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화학 3법이 수용하고 있는 환경법원칙의 모습

화학 3법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사전배려원칙과 원인자책임원칙을 담아내고 있다.

(i) 어떠한 화학물질이 인체 건강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과학적으로 불확실한 단계에서 사업자에게 화학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 유해성, 위해성 등의 정보제출책임을 지우고 이러한 책임을 다하기 전까지는 해당 물질의 제조·수입을 금지하는 화평법상의 화학물질 등록 제도, (ii) 유해성심사나 위해성평가 결과 위해성에 대한 우려만으로 허가물질로 지정함으로써 해당 물질의 제조·수입·사용을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사업자가 해당 물질의 안전성 등에 관한 추가정보를 제출하여 해당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용도로의 제조·수입·사용을 허용하는 화평법상의 허가물질 제도, (iii) 화학사고 발생으로 인한 영향을 미리 평가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서의 작성·제출을 유해화학물질 영업허가를 위한 최소 요건으로 삼고 있는 화관법상의 화학사고관리예방계획 제도, (iv) 살생물물질과 살생물제품의 제조·수입·판매·유통 이전에 그 안전성, 즉 “사람·동물의 건강 또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것”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업자에게 전환하고 있는 살생물제법상의 물질 승인과 제품 승인 제도 등은 사전배려원칙과 원인자책임원칙을 구체적으로 규범화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화학 3법 이후, 아직도 불안한 우리 사회

지난 5월 18일 개정된 살생물제법은 살생물제품 피해구제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 이는 연말부터 시행 예정인데,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구제제도가 시설의 설치·운영으로 인한 피해만을 구제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한계가 인정됨에 따라 생활화학제품 사용으로 인한 피해 구제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로 우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제시된 그 개정이유는 반갑지 않다. 즉, “살생물제품에 새로운 화학물질이 지속적으로 상품화되고 있어 피해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구제 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화학물질 및 제품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그 피해의 우려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No Data, No Market”, “No Safety, No Market”을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고 과도한 기업 규제라는 산업계의 볼멘소리를 들어가며, 화학 3법 체계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법제도를 정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앞으로의 법적 과제

환경법학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등록대상이 되는 화학물질의 제조·수입량 기준, 등록이나 승인에 부여된 장기의 유예기간, 허가물질 지정기준 등의 불확정개념에서 비롯되는 행정청의 폭넓은 재량, 관련 법령의 분산과 부정합 등 입법적으로 논의하고 다듬어가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케미포비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법 조항 그 자체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단 1개의 허가물질도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단지 법적으로 허가물질 지정기준이 불확정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정부의 능력과 의지의 문제인가? 우리가 법 적용과 집행의 문제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화학 3법이 사전배려원칙, 원인자책임원칙 등을 법적으로 수용하고는 있지만, 기업이 화학물질 관련 정보의 생산·활용 등에 있어서 그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도록 준비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둔 것인데, 과연 기업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적절히 분류하고, 노출시나리오를 제대로 작성하고, 평가된 리스크를 적절히 저감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부는 기업이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단지 서류로 평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자료나 정보의 정확성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조직과 전문인력, 재원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또한, 기업이 힘들게 생산한 물질이나 제품 관련 리스크 정보가 소비자 등 국민에게 제대로, 그리고 알기 쉽게 전달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우려와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법을 만드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집행하기 위한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직이나 인력, 예산, 기술개발 등 여러 방면에서 법이라는 도구를 제대로 다룰 수 있기 위한 손과 발을 달아주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배려원칙, 원인자책임원칙 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 하나의 환경법원칙, 협력원칙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환경문제는 어느 한 개인이나 사업자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민, 사업자 모두의 협력이 요구된다. 정부 차원에서는 화학물질의 등록, 평가 등 전 과정에 있어서 환경부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기관의 협력적 대응이 필요하며, 중소기업 등 그 책임의 성실한 이행을 위한 역량이 부족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컨설팅을 비롯하여 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행정적·기술적·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그리고 사업자를 피규제자로 인식하고 일반국민을 정보전달의 객체로만 인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서 관련 제도의 설계는 물론 운용과정에 있어서 정부, 기업, 국민 간의 협력, 소통과 조정을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모두가 협력하여 이들 과제를 하나둘씩 헤쳐갈 때,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 머지않아 우리 앞에 열릴 것이다.

 

필자소개

한양대 법학과에서 환경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연구위원, 실장으로 근무하였고, 2013년부터 부경대 법학과에서 환경법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한양대 겸임교수, 중앙환경정책위원회 위원, 환경오염피해구제정책위원회 위원, 인디애나주립대학교 방문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화학물질관리위원회 위원,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위원회 위원, 화학물질정보공개심의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위의 칼럼은 <과학과 기술> Vol.627, KOFST    2021년 8월호에 기재된 글입니다.